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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Oct 27. 2022

빤스 벗은 자들: 인간의 자유를 망치는 그들이 지옥이다

한국에는 욕 문화라는 것이 있다. 손님에게 거침없이 욕부터 하는 할머니가 하는 음식점도 있었으니 참 특이하다. 다만 친할머니처럼 친근함을 주기 위해 한다는 욕이 막상 손님과 돈 문제로 얼굴을 붉힐 때에는 서울 말투로 변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농담이지만 겉과 속이 다른 마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우리 사회 일부 종교 지도자들 중에는 자신에 반대하는 상대방을 향한 욕설과 비방을 거침없이 싸지르는 자들이 있다. 바닥까지 스스로 자신을 낮춤으로써 사람을 섬기라 했던 가르침을 비틀어 신에 대한 헌신을 종교 지도자에 대한 복종으로 교묘하게 바꾸어 놓았다. 잘못된 행동이나 언사에 쓴소리를 했을 때 종교적 권위를 내세우며 꾸짖기부터 먼저 하는 자의 내면은 스스로를 신의 대변자로 착각한 나르시시스트를 넘어 정신병자 수준이다. 


엄격한 도덕심이 요구되는 성직자가 타락했을 때 나는 그들을 인간쓰레기라 부르고 싶다. 드라마 '수리남'에서 마약상이 목회자 행세를 한다면 그를 목사라고 부르며 따를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많다는 것이 문제고 사이비 종교를 따르는 자들이 신념을 버리기는 매우 어렵다. 


나의 경우만 해도 오랜 기간 헌신했던 교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로 큰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는 치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작은 동네 교회에 불과했지만 사위에게 물려주고자 온갖 거짓을 말하고 자신이 했던 약속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신도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도 오히려 목회자의 권위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비난하던 부끄러움을 모르던 자의 추악함은 잊고 싶은 슬픈 기억이다. 


대학생 시절 나는 매주 전도 활동을 보고하고 소감이라 불리는 반성문을 발표하며 장막이라 불리는 공동생활까지 참여했던 근본주의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했었다. 목돈 마련을 위해 타인의 대출까지 떠안으며 건축 헌금하기도 했고 성탄절 같은 연휴에는 헌금 상자를 어깨에 메고 거리의 상점을 돌아다니며 헌금을 모으기도 했다. 스티로폼을 깔고 바닥에 누웠어도 행복했던 시절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된 진실은 목사들의 재산을 불리며 그들의 생활비를 대는 호구에 불과했다. 


평범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권위에 순종적이고 때로는 심하게 현혹되기도 한다. 특히 동일한 가치를 공유하는 집단 문화 속에서는 진실이 왜곡되는 순간 맹목적인 추종으로 변질되지만 알아 채지도 못한다. 유명한 심리학 실험 중에는 명백하게 말도 안 되는 증거를 보여주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주장하면 많은 이들이 소신을 잃고 대중의 주장에 쉽게 동조하고 만다는 실험 사례도 있다. 


사이비 종교의 지도자들은 현란한 말솜씨로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믿음을 심어 어떤 요구도 거부하게 힘들게 한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헌금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모종의 죄책감까지 든다면 당신은 이미 가스 라이팅에 넘어간 상태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한(복잡한 교리는 생략한다) 인생 여정에서 엉뚱하게도 인간에 불과한 종교 지도자의 말에 의존하기 시작한다면 과감히 그의 뺨을 후려 쳐도 믿음에 차이가 없을지 반문하는 성찰 과정이 필요하다. 이런 진정한 용기는 바닥까지 떨어지기 전에는 찾기 조차 힘든 것이기에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궁극적인 죽음을 통해 믿음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을 통해 진정한 축복의 의미가 완성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지극히 개인적인 신앙관에 불과하며 신학적 근거도 불충분합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교인분들을 불쾌하게 했다면 미리 죄송함을 밝혀둡니다)  


사람들은 진짜 자신에게 소중한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가짜 사이비들에게 현혹되기도 한다. 만약 의심이 들면 그 사이비의 뺨을 내려쳐도 믿음을 지킬 용기가 있는지 반문해 보자. 자신이 말하면 빤스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시험을 통과할 진정한 알곡이라고 현혹하는 자의 뺨부터 후려 쳐야 한다. 그래야 자신과 가족의 진정한 자유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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