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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Nov 22. 2022

잠시 멈춤의 미학: 삶을 다시 정의하는 인생의 미적분

일상이 무료해지고 지루해질 때 떠나는 여행은 잠깐의 쉼이 될 수 있다. 청량한 하늘을 배경으로 알록달록한 낙엽으로 얼룩진 가을 산을 보며 쉼 없이 흐르는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거나 혹은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자기의 마음 자세에 달려있다. 


삶이라는 인생의 긴 마라톤에서 우리는 시야를 넓혀 주변을 둘러보기가 얼마나 힘든가. 

일단 물리적으로 우리가 평생 이동하는 거리를 단순화해보자. 모기 한 마리가 주어진 지점에서 태어나고 살아 있는 동안 앞뒤 전후로 제멋대로 돌아다닌다고 가정할 때 n일이 지난 후 모기가 태어난 지점을 기준으로 멀어진 거리는 얼마나 될까. 동전을 던지는 무작위적 문제와 비슷한 방식으로 확률 문제가 된다. 


모의실험을 해본 결과 측정 공식은 x=root(2N/π) km가 된다. 암컷 모기가 대략 50일 가까이 산다고 하니 평균 5.61km를 이동하는 것이다. 100년을 사는 인간이라면 대략 270km를 이동한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될 확률이 가장 높다. 물론 여러 변수를 모두 무시하고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였으니 불확정성이 지배하는 현실에는 잘 맞지 않을 것이다. 동전을 n번 던질 때 평균을 벗어나는 편차는 일반적으로 n의 제곱근에 가까운 것처럼 그저 확률적 통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 거의 대부분은 태어난 대한민국을 벗어나지 못하고 사망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무덤은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시야의 확장은 물리적인 이동 거리보다 훨씬 더 멀리 뻗어 나갈 수 있다. 천문학자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250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를 알고 있고 때때로 생각이 안드로메다로 가기도 한다. 육체는 유한하지만 정신은 무한을 상상하고 무한을 넘어선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능력이다. 


청년기를 넘어 중년에 접어들면서 계속 무언가를 정의하는 삶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린 시절에는 착한 아이가, 학생 시절에는 공부 잘하는 청소년으로 그리고 청년이 되어서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하는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여정이다. 마치 유클리드 기하학의 공리처럼 우리는 모두 사회가 정한 명제를 따라 행복을 꿈꾸고 있지만 삶은 수학 문제처럼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음을 알았을 때는 너무 늦을 때가 많다. 


스스로 인생을 정의하며 살아가지 않다 보면 때때로 무한한 공허감에 압도될 때가 있다. 가끔은 외로움으로 또 때로는 우울함이란 이름으로 가면을 바꾸며 등장한다. 아침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면서 순간을 음미하며 그 찰나를 행복으로 정의하지 못한다면 삶은 고통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생은 수학의 미적분처럼 순간을 무한으로 나누며 살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순간이 0으로 수렴할 때 그 짧은 찰나에도 나에게 주어진 것들을 항상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정의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다. 행복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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