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지털전사 Nov 23. 2022

틀 안에서 벗어나는 교육: 사랑과 욕망은 한 끗 차이다

이번 주말에 자녀가 과학고 소집 면접을 보게 되었다. 최종 합격한다면 부모로서 기쁨은 당연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걱정도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수학과 과학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모이는 학교의 내신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현실적 고민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까지 운동과 기타, 카드, 큐브 등 별별 잡기에만 집중하던(>_<) 아들이 5월 초에 갑자기 과학고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때는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선행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학생을 쉽게 받아 주는 과학고 입시 학원조차 찾기 힘들었다. 학원비를 내는 학부모가 오히려 사정해야 하는 현실은 우리 교육이 얼마나 입시라는 단편적 결과에만 매몰되어 있는 것인가를 보여 준다. 첫째 아이가 특성화고를 지원했을 때 스스로의 인생 항로를 개척해 나갈 모습에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마음으로 기계처럼 문제 풀이에 최적화된 학생들만 인정받는 학교라면 그냥 거절하고 싶다. 


하지만 내가 자녀의 삶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아이의 꿈을 향한 목표이기에 부모는 무조건 지지를 해 주어야 한다. 문제는 자녀에 대한 사랑과 지지가 자칫 하면 기대와 부담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줄타기라는 점이다. 


어렵게 전문 학원에 등록하게 되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어느샌가 잘해야 한다는 욕망으로 바뀌고 있다. 이건 사실 마음을 어지럽히는 독이다. 그저 아이의 꿈을 지지해 주며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지원해 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텐데 기대를 품게 되는 순간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서 불만이 생긴다. 즉 자녀의 성공이 나의 성공과 동일시된다. 


자녀가 부모에게 주는 보상은 이미 태어남으로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안겨준 귀여움과 만족감으로 이미 충분하다. 더 이상의 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산업 혁명 이전에 자녀가 부모를 봉양하는 효도의 개념은 이미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유용하지 않다. 효의 개념 또한 시대에 맞추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자녀를 양육하는 동안 아이에게 절대 욕망을 품지 말자. 다만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부모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것을 항상 되새겨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잠시 멈춤의 미학: 삶을 다시 정의하는 인생의 미적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