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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May 25. 2023

나는 왜 그들을 미워하는가? 편견과 혐오를 생각하다

사회적 갈등이 커진 사회는 거리가 시위로 시끄러워지곤 한다. 자신의 의견 발표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집회를 통해 주장을 발표하고 동조하지 않는 타인들을 적대시한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고 치부하며 무시할 수 있지만 요즘 일이 없어 시간도 많다는 핑계로 방금 떠오른 나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해 본다. 부족한 지식에 더하여 단순한 주관적 의견일 뿐임을 미리 밝힌다.


먼저 인류 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사회 심리적 현상과 편견, 그리고 인간의 정의부터 생각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눈과 코, 입을 가진 인간은 외모로 구별이 가능하다. 하지만 마음은 물리적으로 측정이 불가해 알 수 없으니 구별이 어렵다. 예를 들면 공포 영화 속 단골인 좀비(zombie)는 인간과 동일한 외모이지만 이성이 없다고 여겨지기에 주인공이 도끼로 살해하여도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고대부터 인간의 정의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서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구분 기준을 <이성>으로 보고 이성이 인간을 나누는 본질이라 주장했다. 그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의 도시 문명을 건설한 그리스인만이 진정한 인간이고 그 외 주변인들은 모두 야만인이다. 야만인은 본질적인 '이성'을 이해할 수 없기에 설령 야만인이 의사소통이 가능하더라도 그저 흉내만 내는 유사인간에 불과함으로 노예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본성이 있다. 이른바 존재의 대사슬이라는 관점이다.  꼭대기에 신이 존재하고 아래층에는 천사, 중간에는 인간 그리고 최하층에는 동식물 같은 순으로 배열이 된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항상 서열을 정하고 피라미드와 같은 신분제도를 되풀이해 왔다. 힌두교와 불교의 종교관에는 존재의 사슬에 좀 더 확장된 윤회 사상이 도입되어 카르마에 따른 끊임없는 순환을 이야기한다.


인간의 판단 기준을 이성이 가진 존재라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에도 로마의 철학자 보에테우스는 철학의 위안이라는 저서에서 인간의 구분을 <선함>으로 정의하였다. 즉 선함을 떠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으로 볼 수가 없다는 관점이다. 하지만 선함은 도덕적 판단 기준이기에 누가 선과 악을 정할 수 있을까.


절대 신이 관장하는 선악의 기준은 현대 사회에서도 종교의 흔들리지 않는 기반이다. 중세를 넘어 근대로 넘어오면서 흄은 인간의 구별 기준에도 과학적 기준을 도입하고자 시도하였다. 공감 능력을 가진 인간이야 말로 진정한 인간이라는 관점이다. 만약 아무 힘도 없는 유아를 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으로서 당연히 생기는 분노가 동족에 대한 공감이며 이는 인간이라는 증거가 된다. 칸트는 순수 이성 비판에서 도덕적 판단은 논리적 이성으로 확대해 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논리적인 이성이 인간 구분의 중심이 되었다. 


동양 철학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로 인간을 나누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두 같은 인간이다. 오랑캐라고는 부르지만 인간 이하로 여기지는 않는다. 부족하더라도 학문을 익히고 수양을 하면 인간이 된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잔인한 노예 제도와 전쟁, 약탈이 서양 문화를 넘어서는 경우도 많아서 힘든 현실에 별 도움은 안되었다.  인간은 원래 현실을 편견과 세뇌된 학습으로 현실의 삶을 영위해 가는 존재이기에 철학적 배경은 합리화를 위한 수단이지 궁극적 목적은 되기 어려운 것 같다.


영장류는 영어로 primate인데 라틴어의 우수한 이라는 뜻의 단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인간의 유전자와 98.4% 동일한 침팬지는 가끔 다른 동족 집단을 사냥하기도 하는데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다고 한다. 침팬지와 30년 이상을 함께 살며 연구했던 제인 구달의 저서를 통해 침팬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의 본성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 구별의 실체가 존재하느냐의 문제는 개인적으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타인을 미워하고 혐오하며 구별 짓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편견으로 뭉쳐진 존재이지만 스스로를 합리화하고자 하는 욕구도 있다. 


타고난 본능적 편견에 정치적 혹은 종교적 신념이 세뇌되면 이는 강화되어 결코 바꾸기 쉽지 않다. 원래 그렇다고 인정하고 나 자신의 마음부터 챙기는 것이 해답이지 않을까. 그들은 그들이고 나는 나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자신 주변과 가족부터 챙기는 소시민으로 적당히 살아야겠다.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살 주변 사람 모두가 행복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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