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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23. 2023

기념주화로 보는 역사: 치킨으로 가난과 행복을 말하다

가난이 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이 뒷문으로 나간다는 오래된 말이 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작은 가난에도 행복은 큰 문으로 나갈 정도라는 비유다. 행복은 사랑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나는 가난이 무섭다. 싫다는 느낌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상대가 가난이다. 어릴 적에는 귀신이 무서웠지만 성인이 되면서부터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사람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속임수, 즉 자신의 이득을 위해 남의 고통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이득은 곧 돈이란 말과 동일하다. 


기념 주화중 '닭의 해' 1온스 은화가 있다. 12 간지 중 닭(chicken)은 제일 먼저 아침을 깨우는 동물이다. 번식력이 뛰어나 예전부터 귀한 손님이 찾아올 때 대접 하는 영양식이었고 현대에 와서도 <치킨은 행복>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하루를 열심히 일하고 퇴근하는 아버지의 양손에 들린 치킨은 가족의 행복을 상징한다. 배틀그라운드 게임의 최후 승자가 치킨을 먹는다고 해서 승리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2023년 기준 대한민국 1인당 명목 GDP(국내총생산)는 미화 33,393달러(출처:IMF)로 원화로 환산하면 대략 43,700,000원이다. 치킨 한 마리 가격을 약 2만 원이라 치면 2,185마리 구매가 가능하니 365일로 나누면 하루에 약 6마리를 먹을 수 있다. 


치킨을 먹는다는 것은 가난으로부터의 여유가 되고 자신에게 주는 소소한 사치다. 치킨 한 마리를 먹기 위해 며칠간 고민해야 한다면 가난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부자라고 할 수도 없다. 아무 고민 없이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을 확보하고 있다. 


치킨을 먹고 싶을 때 고민하는 시간으로 계층을 나누어 본다면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 같다. 현실의 불공정은 바로 주변에 있고 가난은 불만을 통해 곧 사회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된다.


대한민국의 산업은 추격을 넘어 추월의 단계로 접어든 선진국의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국민이 경제 발전의 혜택을 함께 누리고 이 혜택이 모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고 있는가 하는 점은 큰 의문이다. 


요 며칠 대통령으로 인해 갑자기 화두가 되고 있는 고등학교 교육을 예로 들어 보자. 개인적으로 극악의 난이도인 킬러(killer) 문제와 사교육 사이에는 그다지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본다. 이런 문제로 실제 영향을 받는 학생은 1등급 이내에 드는 엘리트층, 아무리 많아야 전체의 4% 이내에 드는 극소수일 뿐이다.


본질적인 핵심 문제는 공교육 자체의 현실이 매우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별 학생 1인당 교육비를 살펴보자. 2020년 기준으로 서울시에 설치된 일반고의 1인당 교육비는 450만 원 정도이다. 반면 과학고는 1160만 원, 국제고는 760만 원, 특성화고는 680만 원(이상의 수치는 교직원 인건비, 학부모 부담금을 제외한 금액임)이다.


물론 학교 특성 차이에 따른 예산 지원의 차별화는 매우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특목고 입학생의 대부분이 사교육을 통해 준비되고 있고 가구가 비용을 전부 부담하고 있기에 문제가 된다. 


경제 수준에 따른 계층별 교육 격차가 이미 초등 및 중고등학교까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어른이 되어 치킨 몇 마리를 먹을 수 있을 것인가의 시작점이 부모의 경제력 차별화부터 시작된다면 불공평한 게임이다.


해결책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특목고 수준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 국영수에서 벗어나 다양한 외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국가가 다양화된 교육 혜택을 제공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면 어떨까. 대학 진학을 위한 사교육 없는 세상이다. 이상적이고 어렵지만 교육은 100년의 큰 계획이다. 


공부에 재능이 조금 부족한 학생에게는 기본학력 보장 중심으로, 공부 재능이 있는 학생에게는 심화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육전략이 필요하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나에게 묻지 마시라. 전혀 모른다! 다만 킬러 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로 시끄러울 뿐 정작 중요한 본질은 생각하지 않는 자칭 교육 전문가분들이 장기적 계획을 만들어 실행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은 추격의 시대를 지나 추월의 시대에도 생존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으로 미래를 살아갈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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