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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23. 2023

기념주화로 보는 역사: 페가수스의 날개에서 파멸을 보다

자신이 태어난 해에 속하는 수호 동물을 알고 있는가? 십이간지는 동아시아의 율력 체계다. 앞에 붙는 십간은 하늘을 의미하고 뒤의 십이지는 땅을 의미한다. 


오행(五行)의 다섯 행성인 목성, 화성, 토성, 금성, 수성, 화성에 맞추어 음양의 갑을, 병정, 무기, 경신, 임계를 적용하면 십간(十干)이 된다. 시공간을 12개로 나누어 열두 방위와 월에 맞춰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로 수호신을 삼으면 십이지가 된다.


호주에서도 매년 그 해의 십이간지를 상징하는 동물이 인쇄된 기념주화를 발행한다. 우연히 온라인 경매로 수집하게 된 2002년 말(horse)의 해 기념주화가 있다. 말이라 하면 동양에서는 천마, 서양에서는 페가수스 혹은 유니콘이 떠오른다. 삼국시대 신라와 고구려 벽화에 등장한 선조들의 무덤에도 페가수스와 비슷한 하늘을 나는 말이 보인다. 


그리스 신화 속 영웅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죽이자 그 몸에서 페가수스가 나왔다. 메두사는 원래 아름다운 미녀였으나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랑에 빠진 후 여신의 저주로 인해 괴물이 되었다. 포세이돈은 말의 신이기도 하니 말인 페가수스가 태어난 것도 그럴싸하다.

 

페가수스는 키메라(사자의 머리와 뱀의 꼬리를 가진 괴물)를 죽이는 영웅 벨레로폰의 신화에 다시 등장한다. 막강한 괴력과 뚫리지 않는 가죽 때문에 죽이기 힘들었던 키메라는 결국 페가수스를 타고 하늘에서 공격하는 방법으로 물리치게 된다. 


동화 속 결말처럼 괴물을 무찌른 영웅에게는 왕의 딸과 결혼하고 왕국까지 물려받는 해피엔딩이 있다. 여기서 만족했으면 좋았을 텐데 인간의 탐욕은 항상 끝이 없다. 왕이 되는 데 만족하지 못한 그는 페가수스를 타고 천상에 올라 신이 되고자 한다.


신들이 있는 올림포스에 오르던 그를 괘씸하게 여긴 제우스는 하늘로 날아오르는 그에게 등에 한 마리를 보내 페가수스를 괴롭히고 이에 날뛰기 시작한 페가수스의 등에서 벨레로폰은 떨어진다. 결말은 비극이다. 영웅은 몰락해 평생을 절름발이에 장님이 되어 방황하다 허무하게 죽는다.


교만은 언제나 비극의 씨앗이다. 바벨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던 인간이나 밀랍 날개로 하늘을 날려던 이카루스처럼 스스로의 능력치를 넘어선 교만은 모두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하늘은 돈, 권력, 능력을 의미한다. 헛된 영광을 차지하려는 욕망은 한도 끝도 없이 자라나 결국은 그를 파멸시키고 만다.


요즘 정치 뉴스를 보면 하늘을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웃음이 난다. 도대체 그들이 추구하는 하늘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하다. 십이간지는 하늘을 뜻하기도 하지만 땅을 의미하기도 한다. 높은 곳이 있다면 낮은 곳도 존재한다.


하늘을 나는 말을 탔다고 해서 타협 없는 욕망만을 추구한다면 반드시 추락한다. 하늘 위 영광의 자리와 땅 밑의 지하 감옥은 항상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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