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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지털전사 Jun 13. 2023

기념주화로 보는 역사: 88 올림픽 감격의 시대는 갔다

초여름의 햇살은 맨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하다. 아지랑이 아스라한 늦봄이 지나가며 남긴 청명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맨 살을 드러낸 태양이 한가득 자리를 채우고 있다. 평일 날에도 느지막한 아침을 먹고 근린공원으로 산책을 나선다. 아직도 햇빛이 따가운 시간이라 그런지 그늘막에 어르신 몇 분씩 모여 잡담하고 있을 뿐 공원마저도 시간이 멈춘 듯 적적하다.


코로나 위기 이후 은퇴인 듯 아닌 듯 자발적 반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일하는 절대 시간과 수익이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이라는 바퀴는 한번 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멈추지만 않는다면 약간의 시간 투자에도 지속적 수익을 창출하는 놀라운 마법의 도구가 된다. 고난과 위험은 크지만 도전해 볼 만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누구는 부러워할 만한 삶이다.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와이프는 다시 태어나면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일반적인 삶과 다른 삶이 틀리지는 않지만 더 마음이 편한 것도 아니다. 어쨌든 그 속 사정은 직접 경험해 보아야 알 수 있다. 


88 올림픽 기념주화를 보다 문득 든 생각이 있다. 88 올림픽은 대한민국에 큰 전환점이 된 국제 축제였음을 넘어 속 사정면에서 다른 일반 올림픽과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정치적으로는 전두환 군사 독재 정부가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몰락하고 표면적으로나마 보통사람의 통치를 내세운 노태우 정부가 들어선 시기였다. 국제적으로는 1989년 동구권 유럽국가들의 붕괴 및 1990년 동독과 서독의 통일, 그리고 1991년 소련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공산주의 몰락이 본격화되었던 시발점이었다. 

88 올림픽에서 선보인 대한민국의 저력은 북한에 대한 승리를 넘어 전 세계에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언하는 상징적 랜드마크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에게 88 올림픽은 그저 굴렁쇠 소년과 마스코트였던 호돌이만이 기억나지만 세계 각국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의 도약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급속히 발전하던 역동적 감격 시대였다. 


1987년 기준 약 3,480달러에 불과했던 대한민국의 GNP는 올림픽 이후 성장을 거듭해 2022년 기준 33,393달러(IMF기준)로 증가하였다. 다만 강압적인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철거민이 발생했던 비극과 부작용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분명하다.

시간은 흘러 2023년의 우리에게 지난 30년간의 감격의 시대는 이미 과거의 이야기가 되었다. 올해 경제 성장률은 충격적인 수치로 예상되고 한국은행 총재마저도 향후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칫 정치적 공방으로 이어질지도 모를 원인 분석에 대한 책임은 잠시 접어두고 모두가 위기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도약으로 극복해 나가야 한다. 당연히 말만 쉽지 실제적으로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 함정이다.


무기력과 우울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할 때 그 고통에 대한 화풀이 대상은 엉뚱하게도 사회적 약자에 향하기 쉽다. 노동자가 대상이 되고 시민이 대상이 된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은 우울한 감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무기력이 우울증의 증상에 더 가깝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래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듯 한 무기력한 감정과 현실적 경제 고통이 함께 수반될 때 진정한 우울증 사회가 된다. 


극복을 위해서는 주관적인 객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현재를 긍정적인 모습으로 재 수용하는 과정이다. 즉 현재의 상황을 비판적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한걸음 뒤에서 긍정적인 장점을 찾아 다시 평가해 보는 것이다. 


계층과 지역, 성별을 떠나 의견이나 관점이 상대편과 크게 다르더라도 서로를 인정하고 좋은 점을 발견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다가올 혹독한 우울증의 시대를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감격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우울의 시대를 극복해 줄 누군가를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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