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한국의 미래에 희망이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개인적 의견으로는 추후 20여 년간은 어두운 뉴스가 희망을 주는 소식보다는 더 많을 것이라 예측한다.
당장 내일 일도 예측하기 힘든데 2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솔직이 바보스러운 짓이다. 하지만 현재 출산율 0.7일 때 태어난 세대가 청년층이 되어 거의 2배 이상의 인구가 될 노년 세대의 복지와 연금을 감당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 조건에서는 어려워 보인다.
이미 도래한 각자도생의 시대에 은퇴한 노인들까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추세가 앞으로는 더욱 당연한 현상이 될 것이다. 설령 어느 정도 자산이 있는 노인들까지 잠재적 노후 자금 불안에 시달리는 사회는 비정상이지만 미쳐 날뛰는 시대에서는 새로운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다. 노년에도 일을 해야 행복하다며 떠들어 대는 언론을 통해 우리의 가치관 마저 어느새 자연스럽게 변화해 가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지 않다. 인간의 생물학적 수명은 38세라는 오스트레일리아 분자 생물학자의 DNA분석 논문을 본 기억이 있다.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세상에서 엉뚱해 보이지만 의료 기술의 발전과 생활양식의 변화등을 제외하면 우리는 침팬지(39.7년)나 오랑우탄과 비슷한 자연 수명을 가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미 평균 수명 이상을 산 나는 감사하게도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셈이다. 걱정은 부질없고 하루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그러니 죽기 전날까지도 일해야 행복한다는 사회의 요구는 더 이상 따르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있다.
지난주에는 6힉년 아이들과 체험 학습으로 함께 심었던 감자를 반별로 수확했다. 화분에 씨감자를 심으며 지어주었던 별명('눈을 감자', '포테이토칩'등)에 걸맞게 풍성하게 자란 감자들 사이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살아오면서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독하게 살아야 한다는 뜻이겠지만 인생 2막은 조금 달랐으면 한다. 나누고 봉사하는 삶의 철학이 더 소중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스스로의 마음 자세에 따라 천국에 살수도 지옥을 맛볼 수도 있다. 텃밭에서 두터운 흙을 뚫고 스스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겹겹이 쌓인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장막 사이에 오늘 하루도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우리를 위하여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