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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Mar 13. 2020

아드리안 게니의 The Drowning

화가의 그림보기 2

조용히 앉아 한지를 잘라붙여 고요하고 평화로운 추상을 하는 동료가 있었다. 어느날 "언니, 이 작가 화집 샀어!  감동적인 작가야!"라며 내게 보여준 작가가 오늘 소개하는 바로, 아드리안 게니 Adrian Ghenie 이다. 그림만 보면 '독일작가네' 싶지만, 알고보니 그는 루마니아 작가였다.


아, 루마니아가 도대체 어디 있더라?  루마니아는 독일, 헝가리,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흑해를 낀동유럽 한곳에 위치한 공화국이자, 유럽연합회원국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게 점령당해 소비에트 연방이자, 인민공화국이 이어지다가 차우셰스쿠라는 독재자에 의해 1965년부터 1989년까지 신음하던 곳이란다. 루마니아 혁명을 거쳐 1990년이 되어서야 민주화가 된 역사를 가진 작은 나라다.


Adrian Ghenie(#아드리안_게니) 는 루마니아 태생으로 현재, 베를린과 런던에 거주하며 작업하는 역동적인 현대회화 작가이다. 1977년생으로 기록을 찾아보자면 2005년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2015년에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루마니아관에 초대받은 전력을 가진 역량있는 화가다.


그는 루마니아의 25년간 이어진 독재정권안에서 살아왔고, 루마니아 역사 안에서 느끼는 개인의 공포와 억압,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인물과 추상적 형식을 섞은 그의 작품 안에서 그가 스스로 밝힌 고전적인 맥락, 즉 구성, 인물, 빛의 사용을 통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이 역사와 현실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있던 과거의 작품에서 점차 동시대로 나아오면서, 독재정권이 끝난 지금은 그림들은 좀더 개인적 서사로 다가가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런 그림을 가볍다고 볼 수 있겠냐만, 억압과 공포를 주제로한 초기작품보다는 그렇다는 말이다.


게니의 그림 안에서는 먼저 터져나오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만날수 있지만, 그림을 자세히 보다보면 자로 잰듯한 반듯하게 그린 밑그림을 훔쳐볼 수 있다. 뭉개진 물감 안쪽에 설계된 전체화면의 구성과 인물, 가구나 배경들이 고적주의적 형식적 특성을 기반으로 한다. 말해무엇하냐만 그의 서사 안에는 인물이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그의 많은 작업들은 베이컨이 연상되기도 하고, 독일의 신표현주의 작가들의 표현적 유사성이 곳곳에서 소환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세계대전 당시 자신이 고안한 독특한 형식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이다. 게니의 최근 작품들에서 특히 베이컨의 냄새가 물씬 연상된다.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물감의 물질성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것, 탄탄한 뎃생위에 뭉쳐진 남성적 강렬한 감정의 표현들이 신표현주의의 후예같은 생각도 들게 하고 말이다. 사실, 화가들이란 수많은 작품들을 보고 만나면서, 그 자신이 소화한 타인의 영향이 자신의 작품들 어떤 곳에서 툭 튀어나올수밖에 없다. 최근은 발달한 매체덕분에 과거로부터의 대가들의 오만가지 작업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겠는가.

Pie Flight Study, 2012

게니는 한때,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얼굴을 파이로 짓이겨 놓을 때가 있었다. 최근의 작품들은 그 흐름에서도 벗어난 양상을 보여준다. 1920년대의 초현실주의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커다락 도구로 물감을 밀어 채색하는 색다른 방법을 도입하기도 하고, 앞서 고집하였던 고전주의적 구성과 형식을 벗어나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The Drowning, 195x295cm, oil on canvas, 2019

작년 베니스에 들러, Palazzo de chini안에서 그의 작은 개인전을 봤는데, The Drowning은 거기에서 발표된 작품이었다.  최근 화가들의 작품을 볼때, 제목을 좀 주의깊게 봐야하는 경우가 있다. 제목을 모를때의 그림과 제목의 알때의 느낌은 천양지차다. 미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과거의 그림제목은 후대에서 분류나 지칭을 편하게 하기 위해 짓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메세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화되면서 곧잘, 제목에 의미를 담을 경우가 많다. 제목을 모를 때 이 작품 안에서 베이컨의 색감과 형상의 해체가 가장 먼저 읽혔으나, 제목을 안 이후에는 그림이 슬퍼진다. 
제목은 익사(The drowning).


그의 엄청난 크기나 압도감을 배제한 귀엽고 작은 작품들도 만났다.

그림의 소재가 누구인지 말하지않아도 알겠지?

대가들의 작품에서 내가 얻는 것은 셀수록 많다.  그가 취한 전략을 찾아보기.

고적적인 구성과 인물, 빛을 기초하기, 역사적 사건(암울한 정치적 상황)안에서 감정의 표현을 정당화시키기, 베이컨을 답습한 사실주의 파괴, 물감의 물질적 특성을 과감하게 사용하기, 스토리라인의 획득 정도가 읽힌달까. <20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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