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삶

데일리 순수기록 2026.3.9.

by 아티스트 고요

년초 부터 디지털 드로잉 강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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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한 평생교육원에서 초급반과 중급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일주일에 하루짜리 강의니,

이게 뭐 딱히 돈을 번다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이다.


불행히도, 이 교육원에서 개설한 강의에서, 작년엔

이상한 수강생으로부터 봉변을 당하고, 강의자체를 폐쇄하는 상황까지 이어진 일이 있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본 나의 친구 조는

수차례 나에게 평생교육원 강의 그만두기를 종용하였다.

불특정다수를 위한 강의에서는

그런 이상한 사람을 만날 확률이 크고, 자신의 다른 지인 하나도 너처럼 똑같이,

'이상한 사람에게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우리의 (고귀한) 삶에

스크래치를 원천차단하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주장했다.


"뭐 그 강의로 돈을 제대로 버는 것도 아니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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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따지고 보면 조와 나는, 늘 차단막 안에서의 삶을 살아온 것이 맞다.

언제나 한번씩 걸러진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아온 삶 같은 것.

(이를테면 회사를 다닌다 치자. 어쨋건 종일 만나 숨쉬고 대화하면서 살아가는 동료들은

이력서, 면접, 학벌, 커리어 등의 거름망을 통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무방비의

불특정 다수를 만날수있는 환경은 아니었다.)


조는 그것을 주장하였지만,

나는 대답했다.

"타인의 경험으로 내 삶을 결정할 수는 없어. 이건 너가 이해해줘.

네가 나를 걱정해주는 건 고마워..."


나는,

강의를 계속 하고 싶었다.

아직 답은 모르겠지만,

어떤 즐거움 같은 것이 있었고, 이상하게도 그만두고 싶지않았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지만,

나의 깊은 어느 곳에선 이렇게 판단하도록, 밀어붙였다.


"좀 더 해봐..."

이 강의가 계속될 수 있도록 폐쇄된 강좌의 다른 수강생이 기도를 했다는 소리를 듣고

'내가 가야할 바가 맞구나' 하며, 감동하기도 했다.

그들도 내 강의안에서 얻는게 있었지만, 나 역시 강의를 하면서 얻는 것들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리하여 이번학기에 다시 강의를 개설했고,

중간에 쉬는 시간, 조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저러해서 이렇게 되고있다고 말을 하는데...

자신이야 말로 지금 크로셰 강의를 하는데, 두명에서 네명까지 인원이 늘었다며

즐거워했다.

"어? 그런데, 너 사람들이 너에게 강의료를 내는건 아니지?"

라고 했더니. "그럼. 내가 그냥 가르치는거지. 그냥 즐거우니까... 하하"...

나에게 돈도 안되는 강의를 뭐하러 그렇게 하냐라고 하였던 그는,

가르치는 즐거움을 느끼고, 자신을 찾고 그 가치를 알아봐주는 사람들에게서 희열의 감정을

나와 비슷하게 느끼는 것 아닐까. (돈을 받고 안받고는 전혀 중요하지않았다.)


삶에 있어, 즉각적이며 선형적인 판단은 보류해두는 것이 좋지않을까.

삶은,

늘 똑부러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무형의 어떤 것들이 보상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지금 당장 꽤나 이익이 있는것 같아도,

다각도로 살펴보면, 그게 이익이 아닌 것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경험들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친다.


고귀한 삶은, 거름망에 걸러져 보호받는 삶이 아니라

작은 경험과 마음의 심란함, 육체의 고통을 동반하면서 얻는 것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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