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록 2일차 2019.6.11
베니스 여행의 첫날이다.
5인실 도미토리에서 어렵게 잠을 청했다. 시차의 여운도 있고, 흥분감도 가시지 않아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밖은 새벽까지 젊은 취객의 수다로 소란스러웠다. '침대 안의 사람들은 군말없이 잠을 잔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내 침대의 아랫칸에는 꽤나 건장한 청년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는 나처럼 혼자 잠을 못이루고 뒤척였는데, 그 김에 매번 나의 침대가 흔들거렸다. 밤 12시가 넘어 도착한 내가 샤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하면서 어쩔수없이 부산스레 오가니 예민한 사람이라면 더 잠들기 힘들었을게다.
밤 세시 반. 드르륵 거리며 미국에 계신 엄마에게서 보이스톡이 왔다. 엄마는 연결이 잘 안되는 지 착각하면서,전화를 끄는 나에게 세번 연속으로 계속 전화를 하니, 더이상 안 받을수가 없었다. 게다가 뭔 일이 있는건가 갑자기 걱정도 들어, 전화기를 들고 화장실로 가기 위해 이층침대에서 내려오다 계단에서 뚝 떨어졌다. 우당탕 쿵.. 으윽... 다들 나때문에 잠이 깨는건 아닌가 싶었는데, 누가 옆에서 떨어지던지 말던지, 깊이 깊이 잠만 잘자더라. 별일 아닌거 같아, 서둘러 잠을 다시 청했지만 이미 시차 때문에 깊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새벽까지 선잠을 자고, 4시가 되자 부리나케 일어났다. 1층 로비에선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충전을 할 수 있으니까.
주섬주섬 물건들을 챙겨 코인락커에 짐을 넣어두고, 비엔날레로 향했다. 호텔 바로 앞에는 43번 버스가 선다. 그걸 타고, 베네치아 입구의 버스정거장에서 내린다. 인포메이션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6번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지아르디니(Giardini)공원으로 가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비엔날레는 아르세날르(Arsenale)와 지아르디니(Giardini) 공원 두군데로 운영된다고 나와있는데, 긴 영어 문장이라 잘 안읽어봐서 착각을 했었다. 아르세날르가 주 전시장이고, 공원의 국가관은 부전시 쯤으로 여겼는데, 막상 가보니, 전시장 초입의 대규모 매표소는 지아르디니 공원 앞에 만들어져 있고, 아르세날르보다는 좀더 공원쪽이 규모가 크게 보였다.
비엔날레는 세계적인 미술축제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첫 느낌은 우리나라의 광주 비엔날레 정도 같았다. 표면적으로는 일반적인 관광객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나이든 White가 가장 많다. 그들이 컬렉터이거나, 기획자이거나, 한 분야의 작가이거나, 갤러리스트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던, 현대 미술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베니스의 한 외진 공원까지 찾아오지는 않을테니. 금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고 올해가 58회차니, 베니스 비엔날레는 100년이 넘은 금세기 미술잔치이다. 그렇다면 초창기엔 인상파 그림들이 걸렸을까, 괜시리 궁금해진다.
입구에서 주전시장에 이르는 길목마다 국가관이 작은 건물로 만들어져 있다. 국가의 힘이 여기에도 작용한다. 미국, 영국, 덴마크, 이스라엘, 네델란드, 스웨덴,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국가관이 주전시장을 둘러싸고 있다. 아르세날르와 지아르다니 공원에 들어온 국가관은 도합 53개에 불과하다. 장소가 어떻던 이곳에 끼는 것만해도 다행이다 싶다. 누군가의 노력이 들어갔을테니 순수하게 즐거워해도 좋을 듯 싶다. 아니나 다를까, 공원의 안보이는 구석에 한국관도 있다. 이제는 경제력 대국인 한국의 위상에 부합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낫겠지 싶다. 비엔날레 정식 전시장에 들어오지 못한 국가들은 베니스 본섬 전체에 뿔뿔이 흩어져, 공간을 임대하여 비엔날레에 참석하고 있다. 사전 정보를 몰랐던 나로서는, 아무리 지도를 들여다봐도 금번 황금사자 Golden Lion상을 거머쥐었다는 '리투아니아 관'을 찾지 못해 고민하였는데, 안내원한테 물어보았더니 본전시장 바깥에 있다고 했다. 리투아니아 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들이 주전시장 바깥에 별도의 국가관을 마련한 것을 보니, 가히, 베네치아 전체가 미술전시관에 다름없다. 여하튼 주전시장 바깥의 국가관까지 일일이 돌아볼 여력이 관람객 전체에게까지 없을 것이 분명하니, 전시장내에 마련한 옹색한 자리가 바깥보다는 훨씬 낫다. 본전시장에 들어갈때에는 Ticket을 구매해야 했지만, 바깥에 위치한 국가관 입장에는 별도로 티켓이 필요하지는 않는다.
이곳에 출품된 작업들은 별도로 작업 내용을 구성할테니 그때 다시 또 보자.
평소 설치나 비디오 작품에 대해 크게 관심은 없는 내가 주로하던 휘이 둘러보는 식의 감상을 자제하고, 이 작가는 무얼 말하려는가, 어떤 점이 특이한가 등등을 보려고 했다. 인상깊은 몇 작품들이 있는데, 내가 아주 즐거웠던 건 ‘이스라엘 국가관’이었다. 미술은 역시 즐거운 것이라는 매혹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맛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I wonder if the time has come
이하는 가장 즐거웠던 이스라엘관의 Field Hospital전 설명이다.
파랑색 예쁜 십자가가 그려진 플랙카드가 국가관 전면에 내걸려있었다. 스윽, 지나치려다가 뭐지? 싶었다. ‘인내를 갖고 기다려달라’는 표지가 곳곳에 붙어 있었고, 전시의 제목은 필드 호스피털(Field hospital)이다. 공간 초입에 번호표를 뽑으라고 되어 있다. 모든게 ‘병원’을 모방했구나 싶었다. 전시장은 병원과 똑같은 구조로 만들어졌고, 관람객은 대기실에서 자신의 번호가 불리우길 기다려야 했다. 번호가 호명되면 안내자는 몇가지의 문장 중에 원하는 것을 고르라고 한다. 나는 ‘I wonder if the time has come’이라는 문장을 골랐다. 계단을 올라가면 두개 층으로 나뉘어 있고, 앞사람이 절차를 모두 마치기를 매번 기다려야 했다. 모든 관람객은 인내를 가지고 즐겁게 앉아 기다렸다. 이윽고 작은 방 안으로 안내된다. 방안은 완벽하게 방음장치가 되어 있었다. 작은 방안에 있는 유일한 사물인 스피커에서는 그 사실을 알려주고, 관람객의 행위를 유도한다. 두팔을 높이 들고, 스피커의 안내자를 따라 얼마든지 소리를 질러도 좋다는 것. 아, 소심해라. 생각해보니 나는 어디에서도 소리를 질러본 적이 없다. 개미소리 만하게 "아아...."라고 따라 했을 뿐이다. 압도적 고요함의 공간이다. 이런 공간은... 나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다. 음... 기도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오면, 치과병원과 같은 의자로 안내받아, 내가 고른 문장에 대한 비디오 작업을 개별적으로 볼수있게 해준다. 내가 앞서 골랐던 문장은 한 트랜스젠더의 인터뷰 내용 중에 나왔던 말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나의 눈과 모니터가 평소보다 너무 가까운것, 그리고 트랜스 젠더를 찍는 작가의 시선이 과하게 확대되어 보는 내내 시각적으로 불편했고, 아무래도 영어자막을 숨넘어가게 빨리 읽어야 했으므로 뇌가 약간 오버로드 되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인터뷰를 본 두 명의 인터뷰를 시청하게 된다. 두 사람은 그 트랜스젠더의 인터뷰에 대한 각기 다른 의견들이었다. 모든 과정을 거치면 실리콘 팔찌 기념품을 하나씩 주고, 신발벗고 내려가라고 한다. 이로써 긴 전시관람의 절차가 끝난다.
아주 흥미로운 전시였다. 전시의 과정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점, 효과적으로 영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설치된 침묵의 방에 대한 신박한 아이디어, 나 뿐만 아니라 각 관람객이 선택한 영상(영상은 약 5~6개 정도 준비되어 있는것 같이 보였다.) 이 '영상와 그 영상을 본 두 인물의 상반된 의견 영상' 등으로 동일하게 편집했다는 점 등등이 즐거웠다. 나는 이토록 재미있는 전시를 보면 현대미술이 사랑스러워지지 아니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라엘 출신의 예술가와 큐레이터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좀더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자연스럽게 이스라엘관 안에서 팔레스타인을 떠올렸고, 그럼에도 이스라엘 예술가는 참, 평화롭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나는 이스라엘이 지금도 전쟁터로 느껴진다.
아무튼 이렇게 즐겁게 관람을 하던 도중, 지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1시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왔다고? 원래 세시에 도착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것. 여차저차, 이렇게 오라고 설명해주고 좀더 전시를 보았다. 아무래도 그녀가 올시간 쯤 맞춰 돌아가야 할 것 같아 네시가 되기 전에 다시 수상버스를 타고 돌아갔는데, 처음에 탔던 6번 바포레토가 급행버스였다면 급하게 냉큼 타버린 건 완행이다. '아유, 다음엔 꼭 6번 타야지'
상봉.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싱가포르이기 때문에 전에도 그랬듯이, 각각 출발하고 각각 도착했다. 충전기를 중간에 잃어버린 관계로, 한 일본인에게서 겨우 충전기를 빌려 충전을 하면서 호텔 일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방을 올려 두고 일단 충전기를 사러 메스트레 역 부근으로 함께 갔다. 이탈리아의 작은 상점들은 우리나라에선 이제 없어진 동네 구멍가게 같이 생겼다. 물건이 많던 적던 물건이 쌓아올려진 모습이 개인상점의 전형적인 모습을 띤다. 시스템화 되어 있어 24시간내내 환하게 불을 켠 편의점이 어느덧 동네 가게를 대체하게된 오늘날의 한국에 살기 때문에 그런게 눈에 보인다.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급변하는 물결안에 일생 살아온 나로서는 화려하고 지나치게 밝으며,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동시대적 삶이 그닥, 좋다라고 느끼지 못한다. 특히 이렇게 옛모습을 간직한 도시에선 그걸 더 느끼곤한다.
이탈리아식 충전기 하나를 구매하고, 호텔 근처의 피잣집으로 향했다. 피자한판과 파스타, 맥주 등을 모두 합쳐 약 35유로가 나왔으니, 생각보다 식당이 비싸지는 않은 것 같다. 호텔로 걸어오다가 다시 베네치아 본섬으로 슬슬 나가보자 하여 지영과 함께 버스를 타고 움직였다. 다시 버스정거장에서 바포레토를 타고 산마르코 광장으로.
엄청나게 완행을 타서 거의 한시간 여를 거쳐 도착지로 갔고, 그곳을 슬슬 산책하며 돌아다녔다. 사실 우리 여행의 백미는 '수다'에 있다. 수다를 떨며 광장을 거닐다보니 관광객이 아니라 흡사, 동네 주민같은 생각조차 들었다. 베니스는 살면서 세번째인데, 지영과 함께 걸으니 못보던게 많이 다시 보인다.
뭐...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많으니까... 천천히 보자, 천천히!!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으면서, 어딜 들어가지는 않았는데 걸으면서도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로구나 하는 생각. 졸며 졸다, 다시 바포레토와 43번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물한병 자판기에서 사서 올라왔다.
너무 졸려서 얼른 잠을 청했다.
내리 이틀을 숙면을 못취한 결과 아니겠나.
사족
교통비가 의외로 비싼 편이다. 일반버스와 수상버스를 타기 위해 1일권, 2일권, 3일권 패스를 호텔에서 구매할 수 있는데, 각각 20유로, 30유로, 40유로이다. 공항까지는 택시로 35유로, 버스로 8유로 지정되어 있다.
비엔날레 입장료는 일반티켓이 25유로, 3일티켓이 35유로 정도이다.
여행때마다의 불편은 각나라의 컨센트 구멍이 다르다는 점이다. 이곳 이탈리아의 컨센트는 돼지코처럼 생긴 두구멍인데, 한국것보다 약간 얇고, 1~2mm 가량 넓다. 애플에서 나온 코드가 맞는 곳도, 안맞는 곳도 있어 신기하다. 220V 50hz가 표준이니 얼추, 한국것을 써도 고장은 안난다. 구멍에 끼울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