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ALM May 06. 2020

몸의 낯섬, 제니 사빌

화가의 그림보기 3

보통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인물의 회화 작업을 하는 제니 사빌(Jenny Saville, 1970 ~ )은 역시 동시대를 살아가며 역동적으로 활동하는 미술가이다. 제니 사빌은 영국 케임브릿지 출신으로 스코틀랜드의 글라스고우 미술학교를 졸업한 이후, 여성누드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yBa(Young British Artist)의 일원이다.


사빌은 전통적인 여성 누드를 소재로 하지만, 주로 자신의 신체나 의학 서적의 인물들을 그린다. 그녀의 작품은 거대하고, 기괴하며, 대상을 과장하여 일반화된 심미적 기준에 위배되는 압도적 이미지를 제공한다. 자신의 신체를 숙련된 회화적 테크닉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정육점의 고기처럼 ‘추함’을 토대로 드러낸다. 작품의 여성들은 축 처진 살덩이를 지녀 동물을 연상시킬 만큼 과장되었고, 얼굴이 붉은 핏빛으로 뒤덮이기도 한다. 또한 몸은 관능적인 육체라기보다는 동물의 터질 것 같은 살덩어리처럼 느껴지게 그렸다. 사빌의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신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몸에 대한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오늘날의 미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녀는 학생시절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녀의 관심은 회화로 연결되었다. 그녀는 여성의 몸을 낯설게 그림으로써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만들어 폭력에 노출시키는 사회 전반을 이야기하며, 규범 안의 여성에 대한 작가 자신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작품 <Plan>(1993)에서는 등고선을 그린 자신의 몸을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는 시선으로 화폭에 담았다. 몸 위에 그려진 등고선은 지방 흡입 수술 전에 성형외과의가 그려놓은 계획 안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푸코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이 같은 육체의 의학적 조치가 신체에 대한 사회적 통제와 연결된다면, 누가 이 신체를 통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성형 수술을 받는 것이 그녀 자신의 결정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강요하

제니 사빌, Plan, 274x213.5cm, oil on Canvas, 1993

는 문화적 조건의 망에 의한 것인지 물어보는 자극을 받게 된다. 또한 그녀의 <Branded>(1992)의 경우, 과장된 몸 위에 문신한 듯한 문자를 넣었는데 마치 몸에 낙서를 한 것처럼 보이며, 신체에 대한 훼손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들 작품들은 미술사의 대가들이 그린 이상적인 여성 신체의 묘사와 대조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소재인 여성의 몸을 그렸지만 그녀의 그림은 관습과 규범에 의해 타자화된 개인과 이 사회를 표현했다.


여기에서 그치지않고 사빌은 질병과 관련한 사진들을 수집하여 멍들고 상처 입거나, 아프거나 기형인 사람들의 사진을 회화로 재현해 내면서, 이전에 보이던 핑크나 회색의 연하고 가벼운 색들을 점차 붉은색, 갈색, 푸른색의 강렬한 핏빛으로 변형시켰다. 이후 작가는 여성의 몸에서 점차 성전환자의 몸으로 눈길을 돌린다. <Matrix> (1999), <Passage>(2004-2005)에서 성전환자 누드 모델의 얼굴과 성기를 과감하게 묘사함으로써 성 통념에 대한 사회의 인식 문제를 제시하였다. 이 그림의 혼종성(hybrid quality)은 인간 자신의 정체성이 창조의 문제이며 누구나 자기 자신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는 과거 페미니즘 작업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확장된 인간 영역에 대한 인식을 보여줌으로써 포스트 페미니즘의 영역에까지 가치관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빌이 보여주는 몸은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과 그들의 감정이 함께 표현되어 하나의 인간으로 표현된다. 과거, 페미니즘 미술에서 여성 신체를 단순히 억압 표출의 도구로 사용했다면, 사빌의 경우 포스트 페미니즘 미술가로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도구이자 사회의 갈등을 반영하는 표현 도구로써 몸을 사용한다.


사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Cartoon for Virgin and Child with Saint Anne and the Infant Saint John>의 구성을 활용하여 자신의 <The Mothers>(2011)작품을 선보인다. 신화이자 종교적 감성이 가미된 전통적 어머니 상의 위치에 버둥대고 보채는 아이 덕분에 정신없는 여성을 고정시킴으로써 관습적으로 만들어둔 어머니 이미지를 거부하고 현실 속의 고단하고 지친 어머니 상을 표현했다. 이후로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화, 르네상스 드로잉과 페인팅, 현대 예술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문화에 걸쳐 신체의 표현 방법을 달리한 것을 지적                                                                        

제니 사빌, The Mothers, oil on canvas, 2011

 하며 몸에 대한 현실 인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처럼 사빌의 회화는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자 고백이며, 그녀는 멈추지않고 사회 규범과 개인간의 관계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회화 안에서 고착된 여성 이미지를 거부함으로써 기존의 규범화된 틀을 드러내었고 사회적 성의식의 갈등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수용자에게 규범의 권력에서 해방되기를 촉구하고 있다./2020 본인 논문에서 발췌


#제니사빌 #Jennysaville #yba #현대미술 #작가.

작가의 이전글 강아지의 하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