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m's Drawing Diary
+
체감이 된지 여섯달째다.
'우한에 괴질이 돈다'는 기사를 읽은 후 이지경이 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바이러스의 공격이 이리도 거침없을 줄 몰랐지않은가. 기존의 지식을 가지고 맞서려고 했지만, 어떤 행동도 무용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과거의 무엇처럼'이 하나하나 깨지고 있을때, 갑자기 공포가 몰려들었다.
"치료제도, 백신도 ... 요리조리 변형하여 그 어떤 것도 소용되지 않게 된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갈까."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더 많을지 모르겠지만 먼 미래를 그린 영화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개목걸이>이다. 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그 영화들을 떠올리는데, 요즘 같아선 미래의 재난영화가 자꾸 생각이 난다. <나는 전설이다>같은 것.
+
집에만 머무는것이 고역이라, 잠깐 여행을 다녀왔다. 공항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집에오는데, 무례하지않게 기사가 묻는다. "제주를 다녀오신거죠? 거긴 청정이니까" 아마도 "설마 해외를 다녀오신건 아니죠? 어딜가나 바이러스 범벅일텐데!"의 순화버전일 것이다. 바이러스 육개월째, 일상에는 공포가 스며있다. 공포의 저변에는 '내가 전염이 되어 죽는다'는 사실보다, '전염된 내가 나도 모르게 확산의 고리가 될까봐'의 두려움이 깔려있다. 어쩔 수 없이 대면이 많은 직업을 갖는 지인들이 입을 모아 똑같이 얘기한다. 이중고, 삼중고는 '혹시 내가 걸리면 여긴 끝장이다. 이런 일로 TV에 나오면 큰일이지'라는 생각. 민주사회의 투명성은 기실 그런 공포를 넓게 펼쳐둔 것.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런 공포라도 있어야, 그나마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다. 전세계 무지막지한 숫자로 쓰러지는 몸들의 사례를 보아, 우리의 대응이 가장 성공적인걸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
온통 주제는 코로나로 수렴된다. 어제 다녀온 지인작가의 오픈된 신작에도 아니나 다를까 마스크 쓴 슈퍼맨이 등장했다.
+
우아해지고 싶어하는 여자였다. 주인공인 그녀는 졸라맨 허리 아래 과하게 주름잡힌 장미꽃 프린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여전히 화려하시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으호호호~~ 이건 제게 주는 선물이에요!"라고 했다. 천성적으로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녀가 입은 장미꽃 프린트마냥, 말과 행동이 흐드러졌다. 전에는 그녀의 그런 태도와 행동이 싫었지만, 그나마 완성도가 올라간 그림이 나를 좀 너그럽게 만들었나보다. 왠지 짠해보였다. 유아적인 발상의 그림들과 작은 일에도 이성을 잃고 눈물로 결백을 호소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를 지원하는 갤러리스트는 갑자기 엄한 얼굴로 "여기까지만 하세요"라고 하였다. 미술가들은 그들의 작품(과 수준)과는 별개로 여러사람들로 매개되어 있다. '전시'라는 형태의 작품 발표회를 위해 촬영을 하고, 리플렛을 만들고, 파티를 하고, 포스터를 인쇄하고, 평론을 받고, 갤러리스트들을 만나고, 작품을 옮기는 등등의, 필수적인 일들에서 서로의 리스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평론가와 갤러리스트를 소개받고, 훌륭한 촬영사진작가 전화번호와, 캔버스 제작자, 미술품 운송업체, 파티업체 리스트를 교환한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분, 저분을 뜬금없는 오프닝 파티에서 마주친다. 관계안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얕게 깔려있다. 화려하지만 공허하고, 다들 서로 그걸 안다. 엉덩이를 걸치고, 파티에 오래앉아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 얼마나 오랜기간 외로웠던걸까... 그러고 보니, 그들의 세계는 SNS를 닮아있다.
+
잡힐듯 잡히지 않는 코로나와 공허한 세계가 겹친 하루들. 그간 코로나의 축복을 받아 한껏 잘나가던 온라인 브랜드, 쿠팡을 바이러스 바늘이 침입했다. 도통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