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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M Jun 05. 2021

닭과 소심한 반기

오십이 된 후,  새롭게 출근하게 된 사무실은

산 꼭대기의 마을 안에 있다.

일자리가 이런 곳에 있다니! 

도시안에만 일자리가 있을 것 같은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하여튼 나의 직장은 그곳에 숨어 있다.


사무실은 사립박물관 안에 위치한다.

그 박물관은 뾰족하게 튀어오른 뒷산과 연결된 넓은 잔디 뒷마당을 가지고 있는데,

그 안쪽엔 코가 빨갛게 달아오른 백구 한마리가 긴 끈 끝에 매여 살고있다.

그리고 그곳엔,  곤충들을 잡아먹고 사는

한량 닭이 한마리 살고 있다.

이 닭은, 산 중턱에 있는 어떤 양계장에서 도망쳐 와,

넓직한 박물관의 뒷마당을 자신의 집터로 선택한 녀석이다.

관장님이 가끔, 애정어린 말투로

'저녀석, 우리집 텃밭의 상추는 다 뜯어먹으면서, 알은 왜 안주는건지.."

라며, 끌끌 혀를 찬다.


현대적 목가적 풍경이랄까... 닭은 종일 뜰을 한가롭게 거닐고, 

전날밤 천둥번개에 잠을 설쳤던 백구는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한해가 넘도록 박물관 뒷마당에 살고있으니,  한량 닭은 이제 거의 식구가 되어간다.

개똥을 기꺼운 마음으로 걷어내듯,

여기저기 흘린 닭의 뒷처리도 직원들의 몫이다.

(안 그럴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매일 닭을 보면서

'넌 참, 행복하구나'하는

뭐 그런 뜬금없는 잡념이 생긴다.

어느새 백구와 닭은 서로 '닭보듯?' 무심하고

.

사람과 닭과 개는

다들 저 할 일들 하며 한가롭게 살아가는 뜰. 

근래 내 그림에 잡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점점

능력주의, 기능이 있는 것들에만 가치를 매기는 보편적 인식에

반감이 더해간다.

모든 존재는 '무엇무엇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예쁜 것, 기능적인 것,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만이

가치를 인정받는다. 그런,

당연한 생각들이 밉다.

모든 것에 가치를 매기는 삶에 소심한 반기를 드는 것,

그것들이 요즘 내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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