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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daBoxx Sep 20. 2016

이병헌, 영어 발음, 억양

며칠 전 페이스북에서 위와 같은 기사를 봤다.


발음이 좋다.. 자신감.. 악센트... 창피


발음과 억양에 대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p1

나의 한국어 이름은 '성진'이다. 아무래도 미국에 살다 보니 친한 친구들은 '썽' 으로 부르고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이름을 말해야 할 때면 그냥 영어 이름을 말하곤 한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고 또 제대로 성 의 ㅅ 발음을 하지 못 하기 때문에 그냥 영어 이름을 쓸 때가 더 많다.

- 참고로 영어에는 한국어에서 쓰는 플랫 한 사 서 소 수 소리가 없다. 그래서 싸 써 쏘 쑤 식으로 변형되어 발음된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외가는 전라도가 고향이다. 어머니는 서울에서 태어나시고 자라셔서 서울말을 쓰셨지만 아버지는 경북 김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시고 서울로 올라오셔서 말에 경상도 억양이 배어있었다. 언젠가 TV에서 경상도 사람들은 '쌀' 발음을 제대로 못 하고 '살' 거린다기에 유심히 관찰하려 했으나 쌍시옷 들어간 단어를 쓰시는 걸 별로 못 본 것 같았다. 심지어 나의 이름을 부르실 때도 뒷자만 부르셔서 '진이 / 진아' 뿐이 못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가를 방문했다. 뭐 늘 그렇듯 친가에서도 '진이'로 불렸는데

언제가 할머니가 내 풀네임을 불으시는 것을 듣고는 약간의 혼돈이 왔었다.

'승진아' '승지이'

...?

어 왜...?

지금에 와서야 웃고 지나가는 일이지만 어렸을 때는 살짝 혼란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내 이름을 잘 못 알고 살았나 하는 1초의 멘붕이...


이름 두자에 다 받침이 들어가서 일까, 지금도 사촌동생들은 진이형 진이 오빠 등등으로 부를 때가 더 많다.

중학교 때 한국을 방문한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찾아갔을 때 모두가 '진'으로만 부르는데 어찌나 낯설던지.



Ep2

한국 근대사 때문일까, 미국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는 경상도, 유독 부산 쪽 출신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딱히 거부감이 없이 경상도 억양에 친숙해졌다.

물론 대부분이 남자들이고 아버지의 억양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아주 가끔씩 경상도 억양이 매우 진한 여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면

살짝씩 멘붕이 오곤 했다. 뭐 멘붕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미국식 영어 발음만 듣고 살던 사람이 영국식 영어 발음을 듣고 신기해하는 수준이랄까? 아무튼 상당히 새로웠다.


함께 일 하셨던 선생님 중 한 분은 대구분 이셨는데, 억양이 상당히 강하셨다.

나야 이미 매우 익숙하기에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언젠가 너무 태연한 얼굴로

 

'저↗는 서. 울. 말. 을 완↗벽↗하게 구사하죠'라고 하셔서

 

(지.. 진심인가...) 했다.


글로 쓰는 서울말은 모르겠는데 억양은 외국인이 들어도 서울말 아닌데...;;;


한번 더 강조하시면서

 

'대구 사람인 거, 전. 혀. 모르겠지요오!?' 하셨는데.


차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웃어넘겼다.


'왜 서울말 X 서울 발음 0 에 집착하시는 거지' 싶었다.




Ep3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인 Y줌마가 있는데 그녀는 호주에서 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언젠가 쌀국수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한국에서 파는 쌀국수는 너무 맑아서 맛이 안 난다고 서로 툴툴거렸다.

 

'맞아 그리고 '고수'도 얼마 안 넣어줘서 꼭 달래야 한다니까!!!'

'그러게 coriander 가 부족하면 맛이 안나지'

'ㅇㅇ? 너 방금 뭐라고 했냐?'

'coriander?'

'you mean 'cilantro' right?'

'no it's coriander'

'그게 실란트로지 왜 코리엔더야, 얘가 촌구석에 살더니 영어를 잘 못 배워왔네'

'야 사전에 검색해봐 코리엔더지 왜 실란트로야'

-사전 검색 결과 두 개 다 나온다


100% 쓸데없는 논쟁을 벌였다.

미국이 대세이니 미국식 영어로 하는 게 맞다. 이제는 문화적인걸 따라가야지...

영국식 영어야 말로 정통성이 있다. 오죽하면 '영'어 겠냐 등등


영국식 발음이 재밌긴 하지만 아직도 난 미국식이 대세라고 생각한다.

흥!



한국인들은 유독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강의를 할 때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던 부분이 '발음이 안 좋아서 어쩌죠?'

아 물론 발음이 안 좋은 친구들이 있긴 하다.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강세를 올바르게 넣지 못해서 전달력이 부족한 것이지 발음이 안 좋아서

못 알아들을 만큼은 아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많은 한국인들이 발음에 유독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이었다.


기사에도 나오듯 발음이 좋다는 소리에 자신감을....


의문이 생겼다.

좋은 영어 발음은 뭔가???


우선 크게는 미국식 / 영국식

미국식도 미국식 / 캐나다식 - 영국식 / 호주식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미국 내에서도 서부 / 동부 / 중부 / 남부 - 지역별로 억양이 다 다르다.


서부는 약간 여유 있고 좀 웅얼거리는 듯 말하는 경향이 있다. 

동부는 좀 더 새침데기 같달까?

중부는 동부랑 비슷하지만 두 사람을 놓고 비교를 한다면 동부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남부는... 한국어에서 제주도 급이다. 경험상 지나가는 흑형의 소울 풀한 영어 발음이 오히려 더 알아듣기 쉬웠다.


영국 안에서도 스코티쉬 / 아이리쉬 / 브리티쉬 식으로 나뉘는데

개인적으로 스코티쉬까지는 괜찮았는데, 아이리쉬는... 집중을 해도 대체 무슨 소린지...


영어에는 과연 표준 발음이라는 것이 있는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면서 느낀 것이지만, 굳이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사람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등의 사람들은 영어를 대충 쓴다. 정말이지 막 쓴다. 자신의 나라말과 마구마구 섞어서 써서 말하는 본인도 듣는 나도 이게 대화인지 수화인지 싶은 마음에 웃었던 적이 많다.


가끔씩 대화가 되는 사람을 만나면 오 너 영어 '잘'한다 라고 하지 '발음이 좋네'라고 한 적은 없었다.

얼마큼 유창한가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억양은 지역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억양보다는 문법이라던지 강세를 적절히 넣는 법에 좀 더

사람들이 초점을 맞춰서 좀 더 전달에 신경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까운 이웃나라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관동(도쿄) / 관서(오사카)의 억양이라던지 단어 선택에 차이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별로 신경 안 쓰는 듯했다. (적어도 내 친구들 사이에서는)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왜 한국사람들은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는 거지?


'영국식 발음이 좋아요 아니면 미국식 발음이 좋아요?

가끔씩 학생들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뭐 때에 따라 다 다르다. 영국식이 많을 때도 있고 미국식이 많을 때도 있고.

나는 개인적으로 독일인이 하는 영어가 좀 멋졌다 +_+

뭔가 영국 사람들처럼 딱딱하지만 살짝 더 부드러운 소리의 영어?

내가 만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그랬을 수 도 있다.


'그러면 영국식 영어 발음을 배우고 싶어요 아니면 미국식 영어 발음을 배우고 싶어요?'

하면 대부분 다 미국식 영어 발음을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왜 그럴까???


개인적인 생각인데 약간 한국사회의 특성이 묻어 있는 것 같았다.

많이 변화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그래도 대세를 따라가는데 더 민감해서 아닐까 싶었다.


튀는 것보다는 그래도 다른 이들과 비슷함에 좀 더 안도감을 느끼는 그 무엇이랄까.

아무래도 모든 문화가 서울로 집중되어 있다 보니 그런 것 아닐까 싶다.

한반도의 역사를 잠깐 돌이켜 보더라도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시대 이후에는 계속 단일 국가였고

모든 것이 수도 중심으로 돌아가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아주 가끔씩 타 지역에서 발생하고 역으로 서울로 퍼진 것들이 있긴 하지만 (설빙이 그렇다고 들었다)

대부분은 서울에서 시작이 되고 퍼지기 때문에 지방의 특성들이 depreciate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한국어로 돌아가면, 서울지방 사람들은 그냥 그들의 말을 쓰지 다른 지방의 억양을 배우고 익히려고 하진 않는다. 적어도 내가 겪어 본 바로는. 하지만 타지방 사람들은 본인이 갖고 있는 억양을 바꾸하기도 하고 때론 감추려 하기도 했다. 마치 다른 언어를 쓰듯이? 개인적으로 전라도나 경상도의 억양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지방의 억양을 써도 티를 내진 않았지만,


아주 가끔씩 어? 너 부산이지? 하고 물어보면 창피해했다.


억양이 있는 것이 틀리거나 나쁜 것도 아닌데...


기사를 보고 댓글을 보면서도 든 생각이지만, 약간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Diversity / 다양성을 좀 더 appreciate 했으면 좋겠다.


 



역시 공부하다 딴짓은 세상에서 가장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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