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장난을 통해본 인간의 흥망성쇠 혹은 나의 흥망성쇠
요즘 불장난을 많이 한다.
'불장난'이 좋은 행위라고 보긴 힘들지만 이 단어를 '캠프파이어'라고만 바꿔써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내가 하고 있는건 불장난이지만 여러분들의 상상속에는 캠프파이어로 각인되길 바란다.
아무튼 내가 있는 곳이 시골이니만큼 한국의 여느 시골과 마찬가지로 집집마다 이것저것 많이도 태운다.
특히 겨울엔 마른 나뭇가지들을 태우곤 하는데 그 덕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여기저기서 탄내가 엄청 들어온다.
나도 질 수 없어 몇 번 태워봤는데 은근히 재밌다.
왜 어릴 때 불장난들 좋아하지 않나?
나도 좋아했는데 할 곳도 없고, 괜히 했다가 불이라도 크게 나면 인생막차 탈까봐 쫄아서 못했던 기억이 난다.
여튼 지금 하려는 얘기는 '불' 그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니다.
불장난을 하면서 머릿속에 생긴 단상들을 늘어놓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불장난을 많이 해보지도 못했고, 나이든 이후에도 사실 야외에서 불붙일 일은 거의 없었다.
캠핑을 딱히 즐긴 것도 아니라 불을 붙여서 키우는 행위는 나와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조금 쉽게 생각했다.
그냥 성냥이나 라이터있고, 탈 것 적당히 있으면 불 붙는거 아냐?
아니었다.
불은 생각보다 잘 붙지 않더라.
특히나 우리가 상상하는 캠프파이어나 숯불구이할 때의 그런 큰 불은 더더욱 쉽지않다.
크고 딱딱한 나무나 숯에 불이 붙으려면 일단 불의 크기가 커야한다.
그러려면 얇은 종이나 신문지 혹은 마른 나뭇잎같은 것들이 꼭 필요하다.
잠깐 타서 없어지더라도 불의 크기가 커야 두꺼운 나무에 옮겨 붙는다.
아, 물론 한국에서처럼 토치같은게 있다면 게임오버.
성냥이나 작은 라이터정도로 불 붙일 때를 얘기하는거다.
요즘 내가 불 붙이는 수단은 성냥이니까.
다시 돌아와서 큰 불을 만들기 위한 잘 타는 것들이 첫번째로 필요하다.
그리고 또 고려할건 바람의 세기 혹은 방향이다.
바람이 아예 없다면 신문지에 불을 붙여도 그 신문지 정도만 타고 마는 경우가 많다.
혹 바람이 너무 강하다면 처음 성냥에 불을 당기거나 라이터를 켜도 불이 바로 꺼질 확률이 높다.
바람이 적당하게 불더라도 방향을 잘 읽고 불을 옮겨야 확실하게 타오른다.
이런 조건이 모두 충족되더라도 한 번에 딱 붙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토록 불을 붙이는 것 자체가 쉽지가 않다.
그런데 불을 제대로 붙였다한들 그 불을 유지하는 것 또한 공짜로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다.
적당한 두께의 나무라도 의외로 금방타버린다.
즉, 탈 것을 무언가 계속 넣어줘야한다.
그래서 고기를 구울 때 그냥 나무가 아닌 숯을 쓰는게 아닐까 추측해본다.
계속해서 나무를 구해오지 않으면 불은 꺼지고 만다.
불을 유지하는 것 또한 쉽지는 않다.
이렇게 불을 유지하는게 귀찮아서 아예 처음부터 엄청 많은 양의 땔감을 구해왔다고 가정해보자.
그리고 불이 붙었고, 모든 땔감을 한 번에 태워버렸다면...
불의 크기는 엄청날 것이고, 그렇게 커져버린 불은 이제 반대로 끄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어느 나라든 산불 한 번 진압하려면 어마어마한 인력과 장비들이 투입되지 않나.
하물며 작은 가정집에서 벌어지는 화재도 마찬가지로 진압하는게 쉽지 않다.
그토록 붙이기 어렵고, 키우기 힘들고, 유지하는데 많은 노력이 드는 불이 막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지면 그 불을 다루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끄는 것 밖에는 답이 없어지고, 완전히 불을 없애는 것 또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불을 끄고나면 우린 불에 있어서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고,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을까에 대한 자신감도 없어진다.
난 불이 붙고, 꺼지는 이 과정이 인간의 흥망성쇠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인간까지도 가지않고, 불이 붙기 전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같아 보였다.
뭔가 될 듯 될 듯 안되는 나의 지금.
어쩌면 과거에도 그래왔던건 아닐까.
불을 붙여보려고 참 이것저것 노력도 많이 했고, 빨빨거리며 움직여왔지만 왜 한 번이라도 활활 타오르지 못했을까.
신문지없이 무작정 큰 불을 만들어보려고 했던걸까?
바람을 고려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완벽한 조건을 만들어보려다가 불 한 번 붙여보지 못한걸까?
불을 붙여보다가 지쳐서 포기한건 아닐까?
한 번 시원하게 태워보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어떤 순간은 영리하게 불을 붙이지 못했던 것 같고, 또 어떤 순간은 완벽한 불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결국 성냥도 켜지 못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실패는 역시나 붙을랑 말랑할 때 불 붙이기를 포기했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당시는 그게 붙을랑 말랑이었던 것도, 했던 행동이 포기였던 것도 알아채지는 못했다.
요즘 나 뿐만아니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게 많다.
큰 노력없이 운 좋게 불이 빨리 붙어버린 사람들, 그 불을 제대로 관리하지못해 꺼지게 두거나 반대로 너무 커져서 일을 그르친 경우.
정말 오랜시간 불을 붙여왔지만 한 번도 붙여보지 못한 사람들.
굳이 불을 붙이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
열심히 그리고 현명하게 불을 붙여왔고, 유지해왔지만 쏟아지는 폭우에 그 정성들인 불이 한 순간 재가되어버린 사람들.
이외에도 수 많은 경우의 수가 있지만 인생의 원리도 불의 원리에 비유해서 보면 그리 복잡하지는 않은 듯 하다.
사람이 누구나 어느 분야에서든 잘 되고 싶은 욕망이 있지만 그 욕망을 현실화하는건 정말로 힘들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냈더라도 유지한다는 것은 더욱 고될 수도 있다.
여기서 더 잘되고 싶어서 욕심을 부렸는데 그게 그 사람의 그릇에 과분한 일이라면 그 사람은 잘 되기 전으로 어쩌면 더 밑으로 내려갈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욕심을 부리고 싶다면 욕심을 부리기 전에 나의 그릇크기를 알고, 그 그릇을 키우는 것 부터 해야한다.
물론 내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타인을 판단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불도 다시 붙이면 되듯 우리에게도 기회가 없는 건 아니다.
다시 땔감모으고, 얇은 종이 구하고, 성냥준비하고, 바람확인해서 붙이면 된다.
대신 불에대한 트라우마는 극복해야 할 것이다.
무언가를 다시 준비하는 과정은 괴로운 일이지만 다시 일어나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
안그러면 평생 다시 불 붙여볼 기회조차 갖기 힘들테니까.
과연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걸까?
열심히 불을 붙이기 위한 시도는 하는걸까?
그 시도는 영리하게 하고 있나? 무식하게 하고 있나?
열심히 그리고 영리하게 하고 있지만 바람이 한 번 불어주지 않는건 아닐까?
그리고 불이 붙더라도 그걸 유지할만한 능력은 되는가?
불을 키울 욕심은 있나?
욕심을 감당할 그릇은 될까?
힘들게 붙인 불이 꺼지더라도 다시 붙일 근성이 있는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건 여전히 불 한 번 제대로 붙여보지 못했다는 것이고, 지금도 계속 '타닥타닥'하면서 성냥은 켜고 있다.
언젠가는 불이 붙을거란 믿음은 있다.
그 믿음이 약해져서 소멸되기 전에 혹은 불을 붙이다가 내 체력이 소진되기 전에 한 번은 붙여보고 싶다.
그게 현재의 내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