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205일, 길바닥 여행]여행이 묻고, 내가 답하다.

나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by 유턴

여행이 내게 물었다.
1205일, 무엇이 달라졌냐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p.9-


여행에서 돌아온지도 네 달반이 지나가고 있다.
난 그 기나긴 기간동안 무엇이 달라졌는가.

네 달이라는 기간동안 완벽히 한국화된 나는 과연 변화한게 있나.
꼭 변해야할 이유는 없지만 내가 스스로 여행하며 발견했던 좋았던 면들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나름의 다짐도 있었다.
돌아가면 이러이러한걸 해보고, 저러저러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겠다.
그런데 지금 내가 보는 나는 달라진것이 1도 없다.
남이 보면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게 느끼지 않을까.
어쩌면 나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느낄 수도 있고.
사실 나도 누군가 그렇게 변했다면 못 느낄 수도 있다.

곧 우리는 나 스스로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래서 한국에 온 이후로 남들에게 말해도 못 알아듣고, 굳이 말 할필요도 없는 나만의 화두로 홀로 고민 중이다.

"나는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가?"

SAM_8161.JPG


작가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까.

사실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남들의 여행기는 거의 안 보게 됬다.
아마 길게 떠나봤던 분들이라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나 또한 이렇게 떠나기 전까지는 여행기란 여행기는 모조리 읽어댔다.
여행을 앞두고 읽는 지침같은 용도가 아니라 떠나지 못한 나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함이었다.
서점엘가도 여행에세이 코너에서만 두세시간 동안 머물렀고, 챙겨보는 블로그도 온통 여행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다.

내가 직접 해보지 못했으니 모든 내용이 재밌었고, 대단해보였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이건 진짜 허접하다 싶은 책도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시작한 후로는 정말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아니면 잘 보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더 했다.
기존에 읽던 여행기가 다 비슷해보였다.
사실 비슷한거 맞다.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로 유명해진 분들이 책을 출판한다.
유명세가 있으니 출판사쪽에서 제안이 먼저 오기도 할테다.
그렇게 책을 낸 분들의 책도 참 많이 읽어봤다.
여행가기 전에도 돌아와서도 말이다.

모두들 자기만의 여행스토리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여행하며 쌓인 철학 또한 다를 것인데 어찌 책은 그렇지 않았다.
비슷했다.
책을 내기전 sns로 홍보하는 말들도 비슷하다.
'시간의 순서로 책을 엮지 않았고, 제가 생각했던 것들 위주로 썼다.'
이 말은 보통 맞는데 무슨 생각이 들어가있는지 모르겠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책이란 것이 쉬울수록(별 생각이 없을수록) 술술 읽히게 마련이다.
물론 재밌을 때도 그렇지만 그 때와는 다르게 뭔가 비어있는 느낌이든다.
아 이렇게도 책을 낼 수 있구나...
내가 책에 엄두도 못내는 이유는 그런것이었다.
나에게 제안 한 번 오지 않았지만 내가 원고써서 열심히 돌릴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책을 쓴다고 가정해봐도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남길 자신이 없었다.

SAM_8162.JPG

작가의 블로그를 알게된건 오래됬지만 그리 챙겨보지는 않았었다.
단지 블로그가 꽤 유명하다는 정도만 알았다.
내가 떠나기 전에도 여행중이었으니 내가 돌아오기 전에 작가는 한국에 있었을 테다.
그 때쯤이었다.
내가 정확히 어디즈음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작가의 블로그를 꾸준히 보고 있었다.
그래서 책을 읽은 지금도 이 사람이 어느 어느 나라를 다녀오고, 얼마만큼 오래 떠나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이 부분이다.

흔히들 여행을, 여행에세이를 홍보할 때 '**개국 **도시 ***일간의 대 장정' 이런 식으로 자극을 준다.
그런데 이런 여행일수록 책은 별 것 없었다.
그 사람들의 여행을 비하하는게 절대 아니고, 난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책이라는 대상은 얼마든지 비평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205일, 길바닥 여행]은 달랐다.
분명 여행기인데 팍팍 읽히지는 않는다.
가볍고 자극적이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 대한민국 출판계(음악도 영화도 공연도 마찬가지)의 특성을 기준으로 본다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만큼 묵직하다.
그 무게만큼의 메시지를 담고있다.
이 사람이 어떤 여행을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어떤 생각을 갖고 여행을 했으며 어떤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냥 그런 가볍고 자극적인 여행기를 기대하고 이 책을 봤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살짝 실망했더라도 책을 완독하기를 추천한다.
여행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든 나처럼 다녀온 후든 혹은 여행 중이든 분명 자신을 돌아보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여행을 갈 생각도 없고, 갔다온게 아니라도 좋다.

난 사실 책을 읽고 더 깊은 좌절을 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야 책 낼 수 있는 거지'
앞으로 이런 여행서적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 이전에 독자들이 이런 책을 많이 알아봐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더불어 나도 작가처럼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행이 내게 다시 묻는다.
무엇이 달라졌냐고.

이제는
그 물음에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씨앗티스트다.

-p.346-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 이게 아니다 싶은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