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름, 아버지

나는 결국 아버지의 문장 위에 서 있다

by 다시청년

강요된 그리움 앞에서

그리운 아버지. SNS 화면에서 이 단어를 볼 때마다, 손보다 생각이 먼저 멈춘다. 따뜻한 기억을 꺼내는 글은 넘쳐나지만, 나는 그 단어에 늘 마음이 흔들린다. 다들 아버지가 그리운가. 아닌 나는 이상한가. 이런 나는 불효하고 있나.

부모를 존경해야 한다는 통념이 불편하다. 아버지를 떠올리면 마음이 복잡하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사연에는 ‘좋아요’가 몰리고, 내 속내는 늘 그 주변을 맴돈다. 누군가에게 털어놔도 돌아오는 말은 비슷하다. ‘그래도 너를 낳아주셨잖아.’ 말이 멈추고 가슴도 닫힌다. 세상은 부모에 대한 감정을 정해진 틀에 묶는다. 사랑해야 한다고, 그리워해야 한다고, 미워하면 안 된다고. 내 마음은 기댈 곳이 없다. 혹시 냉정한 사람, 못된 자식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두려워, 침묵이 몸에 배었다.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서는 불편한 것도, 미운 것도, 그리운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혼자 서성인다.


아버지의 그림자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억은 집에서 키우던 누렁이와 겹쳐 있다. 마당 한쪽을 지키던 누렁이는 정찰병이었다. 누렁이가 짖으면 곧 아버지가 들어온다는 신호였다. 놀던 우리는 눈빛을 주고받을 틈도 없이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뛰어들었다. 심장은 쿵쾅거렸지만, 눈꺼풀은 꾹 눌러 닫았다. 자는 척이라도 해야 취중 잔소리의 화살을 피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마셨다. 취기가 오르면 자식들을 불러 앉혀 놓고 끝없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발이 저려도 일어나지 못했고, 벽시계만 힐끔거렸다. 그 순간만큼은 마징가 제트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버지를 멀리 데려가 버리길 기도했다.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지면 찾으러 나서야 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밤길,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가 날 때마다 누가 따라오는 듯해 등골이 서늘했다. 취한 아버지 얼굴은 낯설었고, 술에 지배된 몸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역겨운 냄새도 진동했다. 그 순간마다 소원은 하나였다. 제발 빨리 아버지가 잠들어버리기를. 술 취한 아버지를 마주하는 일, 어린 나에겐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어린 시절 밥상머리에서는 또 다른 긴장이 흘렀다. 이웃집 아이와 성적 비교, 엄마에 대한 훈계 등 달갑지 않은 이야기가 식탁을 무겁게 눌렀다. 성인이 된 뒤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른 집 자식이 부모에게 준 고가의 선물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꺼냈다. 객지 생활을 시작한 동생은 수화기를 들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손끝은 숫자판 위를 맴돌았고, 결국 수화기는 제자리에 놓였다. 아버지는 가족을 힘들게 하는 존재였다. 누렁이의 짖는 소리, 술에 취한 냄새, 밥상머리의 비교가 겹쳐 나에게 깊은 자국을 남겼다. 아버지, 누군가에겐 따뜻한 단어일지 모른다. 나에겐 무겁고 불편한 이름이다.


끝에서야 시작된 질문

평온한 오후,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익숙한 사무실이 갑자기 낯설게 변했다. 책상 위 커피는 식어 있었고, 모니터 속 커서는 쉬지 않고 깜빡였다. 동료들은 각자의 일로 바빴다. 내 시간만 갑자기 정지되었다. 사람 목소리도, 기계음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진공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했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났다. 예상도, 준비도 없었다. 묶여 있던 감정이 그제야 느슨해졌다. 이상하게 후련했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이게 슬픔인지, 미안함인지, 뭔지 모를 감정이 들이쳤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나는 끝내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보내 드렸다는 것. 그 사실에 마음이 아렸다.


불만이 많고, 고집스럽고, 불편한 어른이었던 아버지. 느슨해진 경계 틈으로 질문이 비집고 나왔다. 아버지는 왜 술에 기대는 인생을 살았을까. 억센 고집 뒤에는 어떤 두려움이 숨어 있었을까. 나는 그 대답을 듣지 못했다. 대신 나에게 질문이 시작되었다. 내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아버지의 흔적은 무엇일까. 아버지가 남긴 자취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늘 아버지의 반대편에 서려 했다. 단점을 먼저 짚던 아버지 곁에서, 나는 장점을 먼저 보는 습관을 의도적으로 길렀다. 그 시선은 내 관계를 긍정으로 이끌고, 좋은 사람들로 채운다. 술은 나도 좋아한다. 다만 나는 좋은 말이 안주고, 아버지는 속상한 말이 안주였다. 사람의 특징을 잘 파악하는 눈썰미, 언변으로 상대를 끌어당기는 힘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그가 남긴 흔적 위에 내가 쌓은 선택이 오늘의 나였다.


결국, 연결되어 있었다

딸아이가 내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결심했을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기 인생, 스스로 잘 만들어 가겠지.’ 그 순간, 낯익은 말이 떠올랐다.

“지 인생 지가 알아서 하겄지.”

아버지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그 말을 불만 섞인 체념, 방관으로만 이해했다. 이제야 다른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말도, 결국은 나를 믿어 주려는 서툰 표현이 아니었을까. 내가 너무 어려서 그 의미를 끝내 알아채지 못한 것은 아닐까. 멀리하려 했던 아버지의 흔적은 내 안에 살아 있었다. 결국,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유품을 정리하다 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했다. 매일의 일상이 반듯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경태한테 노니와 마늘 보냄. 제초제 사서 뒷밭에 침. 만악이 형님과 술 한잔함. 요즘 비가 부족해서 걱정.’ 투박하지만 정직한 하루들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를 전부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닮지 않으려 애쓴 시간 속에서도 나는 그를 많이 닮아있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조차, 어설프지만 성실하게 적어 내려가던 아버지 일기의 연장선이지 않을까. 내 일기를 꺼냈다. 내 일기를 꺼냈다.



2025년 8월 10일, 맑음.

아버지, 여전히 당신을 전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조금씩 용서로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떤 하루를 살았든, 그 하루가 나를 만든 것도 사실입니다. 미움과 후회가 범벅이지만, 그 위로 배움이 쌓이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용서를 배우는 중입니다.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중입니다.




일기의 마지막 줄을 적으며, 나는 오래 미뤄 둔 용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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