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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uly Jun 04. 2022

'유동'이란 무엇인가?

철학의 기원 3,4장



5월 26일에 한 두번째 수업에서 핵심 질문은 '왜 가라타니 고진은 이오니아의 몰락을 강조했는가?'와 '유동이란 무엇인가?' 였다.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이오니아의 자연철학자가 부정한 것은 신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사건을 사후적 내지 목적론적으로 보는 관점 자체이다." 




이 구절을 보면서 내가 인간의 사고방식에서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이러한 관점을 나만 느끼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굉장히 부러워했었다. 그런 사람들이 대중매체에서 어떤식으로 주로 얘기했냐면 자신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계기들이 있었고 그 후 그 일을 매진해서 이렇게 살아 오고있다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주로 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평생 매진할 수 있을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찾을 수가 없었다. 평생을 매진할만큼 좋아하는 일이라는 건, 적어도 나에게는 없는 걸로 보였다. 그걸 뒤늦게 깨닫고 난뒤에 나는 대중매체에 비쳐줬던 그 사람들을 이야기 방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현재의 모습에 맞춰서 과거의 사실들을 기억 속에서 변형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앞으로 이 일을 매진하며 살아야지! 라고 다짐했던 순간이 있었다기 보다 돌이켜보니 아 이런 순간에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살아도 된다고 느꼈구나 라며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던게 아닐까 라고. 이게 사건을 사후적으로 보는 관점이고 결과적으로 이게 목적론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는 관점인게 아닌가 싶었다. 




왜 이 얘기를 하냐면 결국 이 <철학의 기원>이라는 책 자체도 가라타니 고진의 강한 관점을 바탕으로 여러 사실들을 엮어 낸 책이고 결국 이 책조차 사후적이고 목적론적인 관점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가라타니 고진이 이오니아의 몰락을 강조한 이유는 이오니아가 철학의 기원이며 회귀해야 할 목적으로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인게 아닌가 싶다. 선생님께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셨지만 나는 사실 좀 더 단순하게 보는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의 연장성에서 이소노미아의 반대항은 불평등이고 결국 '유동'이란 '정주'의 반대 개념으로 부각이 되는데 내가 보기에 가라타니 고진은 '정주'가 곧 불평등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유동'이 가라타니 고진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가라타니 고진은 '유동'을 강조하기 위해 수렵채집민  중에서도 '정주' 수렵채집민과 '유동' 수렵채집민을 구분하면서 고고학적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유동' 수렵채집민의 성격들을 가설로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유동' 수렵채집민일때는 불평등 없이 모든 것을 나누는 그런 사회였으나 '정주'하기 시작하면서 부의 축적과 함께 잉여가 발생하면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생겨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상태에서 국가의 단계로 가지 않은건 씨족사회가 호혜성을 기반으로 사회원리를 구성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럼에도 불평등이 생기기 시작하면 국가가 발생할 확률이 올라가고 결과적으로 국가가 생기면서 교환양식 A에서 B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는 걸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는 아마도 가라타니 고진이 희망하는 사회에 대한 열망이 책에 드러난게 아닌가 라고 현재는 생각하고 있다. 자유롭고도 평등한 사회. 그러기 위해서는 유동적인 사회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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