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나무와 아메리카노
나는 추리물이나 사건 사고를 다루는 콘텐츠를 좋아한다.
셜록 홈스,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고전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 까지.
특히 다큐형식의 성우가 나와서 설명해 주는 영상을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접속사만 들어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예측할 수 있다.
그렇게 ‘사건, 사고 방송’을 너무 즐겨 본 탓일까, 이제는 아예 내 머릿속에
그 내레이션이 들어와서 재생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한창 외출할 준비가 끝나서 외출을 하려는데 엄마가 청소를 하고 나가라고 하신다.
지금 딱 나가야 시간이 맞는데 왜 하필 이런 때에 청소를 시키신담. 같은 생각으로,
“안 해!”
하고 픽 돌아 그대로 집을 나서서 몇 걸음 걷다 보면, 순간,
“그게 그녀와 엄마의 마지막 대화 였다. ”
이런 거지 같은 내레이션이 울린다. 성우 톤으로.
등장 타이밍은 제멋대로지만 멘트는 항상 비슷하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그 뒤론 볼 수 없었다. ’. ‘ 먼 훗날
그는 이를 두고두고 후회했다.’ 같은 식이다.
딱히 의식적으로 그러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닌데
나의 뇌 안에 다큐팀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툭툭 떠오르는 내레이션 덕분에
나는 종종 인생의 유한함을 상기하며 엄마한테 ‘안 해! ’하는 짓을 안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세상을 사는 사람 중에 존재의 유한함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성자필쇠요
모든 것은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당연한 일이지만 계속해서 확인하고 싶을 만큼 유쾌한 사실은 아니다. 그래서 자꾸만
망각하고 싶어 진다. 나의 지금이 영원하고 존재가 영속되기를 바라며.
내 곁에 엄마가 영원할 것처럼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고
내 몸이 영원히 건강할 것처럼 몸에 나쁜 것들을 즐기고
내 청춘이 언제나 유지될 것처럼 쉽게 낭비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될 수 없다. 나는 이 유한한 인생을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을 곁에 두고 있다.
내 친구 A는 아이스아메리카노형이다.
A가 가진 많은 장점 중 꾸준히 기록하는 모습을 나는 멋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 하나를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기록을 하느냐고 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하기 싫을 땐 안 하는데? “
그러면서 이전에 요조 님이 동생을 잃었던 경험담을 말하며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 인생에서
오늘 마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일로 미루지 말라. 는 이야기를 했던 것을 알려 줬다.
그리고 그녀는 그 이야기 덕분에 매 순간 자신이 하고 싶은 것/하기 싫은 것에 충실히 살아간다고 했다.
내가 하던 일을 하기 싫어졌을 때 그만둔다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그 친구의 인생에 몇 번의 용기 있는 선택을 봐 왔고 하고 싶은 것들을 주체적으로
탐구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녀가 앞으로 좋아하는 것을 더 많이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한다.
친구 J는 인생의 거의 모든 해답을 이미 이 세상을 살아간 훌륭한 위인들이 남긴 책을 통해
찾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마치 전쟁처럼 치르는 친구라 최근에는 손자병법에 꽂히기도 했다.
그녀는 어릴 적 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연약한 아이였는데 (물론 지금은 기골이 장대하다) 그때 그녀는
‘이 친구의 내일을 알 수 없다’, ‘몇 년 후의 삶을 장담할 수 없다.’라는 비관적인 말들 속에
삶의 최후를 상상하며 자랐다. 그런데 아무 일 없이 자라다 보니 그들이 말하던 나이를 훌쩍 넘어서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그런 경험으로 인해 스스로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내일을 준비하는 오늘을 보내게 되었다고 했다.
설사 내일 진정한 마지막이 온다고 해도 내일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과나무를 한 그루 심어두는 것이다.
혹시라도 내일이 오는 기적이 올 수도 있으니까.
명탐정 코난에선 “진실은 언제나 하나! ”이지만 실제 우리가 사는 이곳에선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이곳을 살고 있는 사람만큼의 진실이 있다.
마찬가지로 사과나무와 아메리카노 둘 중에 하나만을 택해서 산다는 것은 위험하다.
어떨 땐 조금 먼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괴로움을 참아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어떨 땐 나중보다 지금의 내 행복을 위한 결단과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앞서 사과나무와 아메리카노로 소개된 두 친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사과나무가 아메리카노를 대신하거나 아메리카노가 사과나무가 되는 순간들이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더욱 값지고 멋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삶의 유한함에 쫄지 말고, 즐겁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