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취급이 싫은, 임시 임산부 상태 LV.3

임산부 배지를 숨긴 임산부

by 유오림



임신을 하면 여성은 다방면으로 변화를 겪게 된다. 호르몬의 작용으로 기분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신체적으로 아기를 키우기 위해 변화하면서 배가 불러오는 것 이상의 힘듦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나 초반 몇 주까지는 유산확률이 매우 높은 때라, 평소보다 조심해서 생활해야 한다는 제약도 있고 입덧이나 먹덧 같은 문제들이 시작되기도 한다.

실제 내 주변에서도 임신 후 몸이 예전 같지 않아 예정보다 빠르게 일을 그만둔 친구, 잦은 통증과 출혈 등의 문제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에 방문하며 노심초사 아기를 지켜야 했던 친구, 임신 후 체중증가로 원래 앓던 지병이 더 심해져 이중고를 겪게 된 친구, 아기의 격렬한 태동으로 갈비뼈가 부러진 친구, 갖가지 이유로 인해 제왕절개 날짜를 일찌감치 받아 둔 친구 등등 그것 정말 괴롭겠다 싶은 또래 임산부 동기들이 많았다. 물론 내가 이들과 다 친구였던 것은 아니고 모두 다 건너 건너 들은 이야기들인데 그래서인지, 이 소식을 내게 전해준 나의 주변 사람들이 근 10개월가량 내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너는 괜찮아? "다.


나는 위의 친구들에 비하면 정말 괜찮았다. 솔직히 만삭이 되기 전까지는 몸의 변화도 크게 없었고 음식을 가린다거나 특별히 뭐가 먹고 싶어 지는 둥 입맛이 바뀌지도 않았다. 임신의 전형적인 증상인 소화불량이나 급격한 기분변화는 있었지만 나름대로 잘 조절했던 것인지, 같이 일하던 동료는 '임산부생활이 이런 거라면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것은 정말이지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일인데 그 감사함이 나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계단 오를 수 있겠어? 서서 갈 수 있겠어? 이거 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뛰어도 되겠어? 일을 계속할 수 있겠어? 몸은 좀 어때? 하며 끊임없이 나를 걱정하고 염려해 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내가 무슨 병이라도 걸렸나? 제발 그만 좀 했으면!

하는 짜증스러운 기분이 먼저 드는 것이다.

분명히 내 상태를 배려해서 해 주는 말인데도 대체 왜 이렇게 삐딱한 마음이 드는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임신을 했기 때문에 오는 작은 제약들 (금주, 금연, 날 것 먹기 조심, 간접흡연도 조심)에서 큰 제약(예약해 두었던 몽골 여행을 취소하게 된 일, 신혼여행으로 정글탐험대신 휴양지를 가게 된 일 등)때문에 생긴 히스테리라기엔 그것들이 사실 내게 큰 스트레스가 되진 않았다. (물론 큰 제약은 속이 꽤 쓰렸지만.) 그렇다고 내가 누리는 상황에 감사함은 전혀 모른 채, 타인의 호의에서 비롯된 말을 마음껏 꼬아 듣고 싶을 만큼 심적으로 여유가 없는 상태도 아니었다.


대체 나는 무엇이 이토록 짜증이 나는 걸까. 고민하던 어느 날, 출근길 버스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텅 빈 '임산부 배려석'을 보며 문득 깨닫게 된 것이, 나는 여태껏 임산부 배지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보건소에서 받은 이후로 계속 내 배낭에 잠자코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내가 느끼던 짜증의 실체가 보였다.

나는 대중교통을 타면 누구나 일어나서 자리를 비켜줘야 마땅한 사회적 약자의 상태가 되는 것이나 이전에 잘하던 것들을 못하게 되고 남에게 부탁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30년이나 뒤에 있을 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나 빨리 찾아오다니. 순식간에 약해진 듯한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짜증으로 덮으면서 제발~ 나를 임산부로 여기지 말고 예전처럼 대해줬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배낭 속 주머니에 숨겨져 있던 배지와 같이 발견한 나의 두려움으로 전보다는 임산부 대접을 받는 것이 훨씬 덜 부담스러워졌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 상태'일뿐, 이 시기가 지나면 나는 전보다 지킬 것이 훨씬 더 많아지는 무적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 힘들면 누군가에게 부탁도 하고, 지치면 천천히 걷자고도 말할 수 있는 임산부 상태를 지내기로 했다. 어쩌면 그동안 숨겨온 두려움의 힘으로 이토록 무던하고 감사한 임산부 생활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 두려움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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