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만에 결혼식 뚝딱
내년 9월쯤 결혼하자! 는 계획으로 플래너님과 결혼식장을 구경 가기로 한, 지난해 8월의 어느 일요일을 하루 앞두고 갑작스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플래너님, 혹시 11월에 가능한 결혼식장을 볼 수 있을까요? 올해 11월이요."
나의 임신소식으로 비롯된 타임어택 결혼식 준비, 주어진 시간은 단 3개월!
11월 손 없는 날에 유일하게 남은 2시 식장은 그날 마지막 남은 타임이라서 50만 원에 계약할 수 있었고, 스튜디오 촬영은 몸만 가면 2시간 만에 알아서 다 찍어주는 스튜디오에 가서 후다닥 찍기, 드레스는 결혼한 유부녀 선배들이 하도 기본 드레스는 허름해서 입기 힘들다는 말에 각오하고 갔지만 생각보다 괜찮아서 추가비용 없이 기본 드레스 낙점. 반지도 프러포즈링 웨딩링 종류가 많던데 우리는 종로의 작은 가게에서 랩 다이아몬드가 조그맣게 들어간 반지를 골라 평생 잘 껴보기로 했다.
사이좋은 커플도 결혼식 준비에는 한두 번씩 크게 다투기 마련이라는데 그건 아마 결혼식 준비 기간이 너무 길어서이지 않을까? 주변에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둘 중 한 명이 결혼식에 바라는 것이 분명히 있거나 두 사람 간에 "합리적"의 기준이 달라서 준비에 어려움을 겪는 커플들이 꽤 있었다. 나의 경우엔 촉박한 시간 탓에 주어진 선택지는 대게 한 두 개 남짓이었고 다행히 둘 다 결혼식이란 것에 큰 로망이 없어서 보통 경제적인 쪽을 택했다. 그런 선택들을 통해 우리가 완벽히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잘 맞춰서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신호를 읽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나는 임신선고 이후 꽤 오래 우울했다. '아기가 생겨서 빠르게 결혼준비를 하게 되었다'는 설명을 가장 처음 들은 플래너님을 시작으로 나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아낌없는 축하를 해 주셨지만 나는 내 모습이 마치 덜 닫힌 채로 덜렁거리는 가방 같아서 부끄럽고 민망했다. 금세 익숙해지겠거니 생각했는데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는 것'보다는 '너무 바빠서 그런 감정을 신경 쓸 새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나는 순간은 항상 있었다. 축가를 직접 하고 싶다며 열심히 준비하던 귀여운 나의 예비 남편, 그리고 상견례 때 유쾌하게 분위기를 이끌어 주던 아빠의 모습과 내가 좋은 딸이었다고 말씀하시던 엄마의 표정은 어쩐지 잊고 싶지 않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내 결혼식은 나와 남편보다 우리를 키워준 부모님을 위한 날로 만드는 것.
그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다 같이 노래 부르며, 이렇게 독립하기까지 키워주신 것에 감사함을 표시하는 것.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
나의 실제 결혼식은 나의 로망을 실현시키는 것보다는 일단 해내는 것에 가까운 행사였지만 결코 나쁘진 않았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나다운 결혼식이었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 놀랄만한 최저가로 30분 만에 해치운 결혼식이지 않은가. 로망은 몽땅 잃었지만 합리주의적 짠순이로 스토리텔링을 좋아하는 나의 정체성은 잃지 않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