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름의 나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샤 Oct 02. 2023

어스름

름의 나열 ch.8


요 근래 결혼식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코로나19가 멈칫한 사이, 식을 취소하거나 보류했던 커플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혼인 입장으로서 영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지만, 한껏 성의를 다한 하객으로 참석하는 일이 참 많았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식사를 하게 되면, 식장이나 식의 연출에 대한 품평들이 이어졌다. 각자 꿈꾸는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제법 흥미로웠지만, 나는 대화에 잘 끼지 못했다. 결혼에 대한 생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식'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딱히 취향이랄 것도 없었다. '살면서 결혼사진 같은 거 다시 꺼내 볼 일이 얼마나 있겠어. 성대하게 해 봤자 어차피 하객들 전부 식장에 어떤 꽃을 썼는지, 신부가 어떤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었는지 기억도 못 할 텐데.' 묵묵히 듣고 있던 나는, 결혼은 아무래도 인생의 새로운 시작인 셈이니까 호텔에서 정말 멋지게 하고 싶다는 한 친구의 말에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조금은 섬뜩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나는 줄곧 내 장례식에 대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식엔 특별한 로망도 어떠한 기대도 없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장례식은 어떻게 치르면 좋을지 자주 상상하곤 했다. 이건 장난스레 하는 공상이 아니다. 나는 나름 진지했다. 나의 마지막을 들여다볼 사람들은 분명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일 테니, 누구도 나를 오래도록 슬퍼하지 않게 마지막은 더욱 찬란해야겠다. 모두가 아쉬운 마음에 울지 않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고요한 눈물이었으면 좋겠다. 내가 공허한 추억이나 부질없는 슬픔으로 남지 않고, 남은 자들에게 생의 좋은 양분으로 남을 수만 있다면 좋겠다. (이건 공상에 가깝지만) 장례식을 빙자한 전시회를 열어도 좋을 것 같단 생각도 잠시 했었다. 작지만 나를 이루는 것들을 토해내고, 잘 다듬어, 그렇게 내가 묻어있는 많은 것을 남겨야겠다. 그러기 위해선, 오늘도 내일도 더 열심히 살아내야겠다. 우습거나 혹은 너무 이른 생각일지 모르지만 지지리도 운이 나빠 내게 주어진 수명을 다 살아내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을 때, 급작스럽게 치르게 될 장례식이라면 더욱 미리 준비해 두어야 했다.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끝나갈 무렵, 여러 번의 앙코르송을 부르곤 마지막 인사를 끝으로 무대를 떠나던 가수.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밝고 후련한 표정으로 인사하던 커튼콜의 배우들. 마지막 순서로 가장 커다랗고 화려하게 터지던 불꽃놀이를 기억한다. 갖은 서사로 가득 들어찬 무대의 끝이 그랬다. 시작할 때 부풀던 기대와 설렘은 막상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금세 옅어져 버리고 말지만, 모든 것을 쏟아낸 뒤 떠나는 마지막은 그렇게 여운이 짙게 남았던 것이다.


그러니 과연 생이란 커다란 무대가 끝나는 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특히나 매 순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내던 생이라면. 우리의 생애를 하루로 계산했을 때, 19시~21시에 해당하는 시간이 바로 황혼이다. 해가 어스레 저물어 가는 박명의 시간에, 우리는 하루 중 가장 강렬한 색의 하늘을 마주한다. 모든 것을 다 태운 후, 떠나기 전 마지막 피날레란 그런 것. 나도 해와 같이 살아야지. 나의 황혼은 언제 찾아올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대단하진 않더라도 꼭 아름답고 싶어서.




낮도 밤도 아닌 찰나의 순간을 사랑한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은 이 순간이 더 이르게 찾아오곤 한다. 하루의 끝에서 해는 모든 힘을 다해 짙고 붉은빛을 뿜어내곤, 이내 차츰 희미하게 소멸되어 사라진다. 내일 또다시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찾아오게 될 것을 여즉 모르는 것처럼, 미련 가득하게 잔상만이 남아있는 햇빛들이 소중하게 좋다. 재회가 예정된 이별임을 아는데도, 사랑하던 것을 보내는 마음은 매번 가득히 아쉽다. 그럼에도 이토록 가득한 만족감에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또 마지막인 것처럼 붉게 힘을 태웠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내일도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낼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나를, 꼭 해를 보는 마음으로 작별했으면.


사라져 가는 것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본다. 달이 한껏 시린 색의 얼굴을 내밀고, 나도 눈을 감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구름²: 오르트 구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