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결국 4. 수제 브라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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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결국 4. 수제 브라우니
설의 고유한 수식어인 '민족 대명절'이란 말은 하나하나 뜯어봐도 참 고루한 조합이다. 한민족을 뜻하는 '민족'과 완전 대빵 크고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진 '대', 그리고 한국식 파티문화라고 볼 수 있는 '명절'을 합쳐놨으니 말이다. 그런 매우 중요한 파티도 코..로 시작하는 전염병의 창궐로 그 기세가 실로 미미해졌다. 비단 코로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게, 각종 미디어에서 유교식 명절문화는 낡아빠진 것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명절에 행복한 사람은 구십먹은 시골 노인밖에 없다는 것도 기정사실인 듯 보였다. (세련된 도시 노인들은 이미 밀레니엄이 도래했을 적부터 제사를 집어던지고 해외여행을 갔다)
어쨌든 오늘은 조용하고-낡은-파티 날이었다. 우리는 꽤 푸짐한 식사를 했다. 양가 어른들이 보내주신 반찬은 삼십 인생 동안 주구장창 먹었던 익숙하고도 맛난 한식들이었다. 오첩반상을 차릴 때는 이렇게 어른들의 도움이 있을 때뿐이다. 둘이서 한 끼를 해치우려거든 원 플레이트 식사가 최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먹고, 깨끗이 씻고, 새 홈웨어를 꺼내 입었다. 아기를 거실에 눕혀두고 끝없이 쌓인 가제 손수건을 접다가 문득 오늘 배달되는 가게가 있을까 궁금했다.
고민을 하는 사이 아기가 깼고, 짝이 아기를 안고 둥가 둥가 놀아주기 시작했다. 나는 배달앱을 켜서 동네 핸즈커피에 주문을 넣었다.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닐라 멜랑슈와 고구마 라떼, 수제 브라우니가 도착했다. 바닐라 멜랑슈는 특유의 고소한 크림을 얹은 라떼다. 내 건 따뜻한 고구마 라떼였는데, 카페인을 먹기 싫지만 달콤하고 든든한 음료를 마시고 싶어 선택한 것이다.
디저트로 먹을 브라우니는 작은 종이 상자에 포장되어 왔다. 한 귀퉁이를 포크로 살짝 찔렀다가 심히 딱딱해서 놀랐다. 수제라면서 냉동된 브라우니를 파는 걸까. 아니면 배달 오면서 성난 겨울바람에 굳어버렸나. 나는 여분의 포크까지 손에 쥐고 브라우니를 찢듯이 쪼갰다. 너 하나, 나 하나. 한 입 먹은 짝의 표정이 황홀하다. 내 입안에서도 깊은 초코의 풍미가 넘실댔다. 맛있네. 우리 사회에서 '수제'의 위상이 예전보다 못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이 브라우니는 그냥 브라우니가 아니라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수제' 브라우니가 분명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출산하는 날에도 투썸 초코케이크를 먹고 병원엘 갔었다. 나 초코 좋아하네. 그렇게 디저트를 즐기던 중 어느새 아기도 쾌활히 큰 일을 보고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