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결국 5. 햄 잡채
엄마가 잡채를 해서 한 통 가져왔다. 어릴 적 기념일에는 잡채를 푸짐하게 해서 1인당 1그릇으로 퍼먹던 기억이 있다. 이 날은 별로 특별한 날이 아니었는데도 잡채를 해주셔서 놀랐다. 잡채는 얼핏 보면 쉬워 보이지만 맛있게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간다. 당면은 먼저 불려둔다. 시금치는 살짝 데쳐 약간 간을 해두고, 당근, 양파 등의 채소는 가늘게 썰어 볶아준다. 잡채용으로 길게 잘린 돼지고기도 볶는다. 중국집에 있을 법한 크고 둥근 팬을 꺼내 준비된 재료를 때려 넣어 휘적여준다. 마지막으로 간장으로 간을 하고 참기름과 깨소금으로 맛을 더한다. 언젠가 피망을 넣기도 했지만 지금은 삼색의 파프리카를 잘라 넣는다.
잡채는 엄마가 가져왔을 때 바로 열어보지 않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어둑어둑해지자 엄마도 엄마 집으로 가고, 나도 내 집에서 느긋이 저녁 준비를 했다. 잡채를 전자레인지에 데우려고 꺼내는데 오늘따라 채소보다 당면이 많았다. 게다가 고기 대신 김밥용 햄이 들어가 있었다. 아질산나트륨에 대한 기사를 읽은 뒤로 가공육은 피하려고 하던 참이었다. 아질산나트륨은 소시지 등에 들어가는 발색제라고 하며, 이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채소가 왜 이렇게 적을까, 왜 한 번도 넣지 않았던 햄을 넣었을까, 머릿속에 궁금증이 떠다녔다. 엄마의 집은 시골에 있는데 시골에서도 길 끝에 위치한 끝 집이다. 마트 나가기가 쉽지 않은 오지다. 그럼 잡채를 해주고 싶었는데 집에 남은 재료가 충분치 않았던 걸 수도 있다. 당면은 간이 잘 베여서 예쁜 간장색이 나왔다. 햄을 몇 가닥만 남기고 다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