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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픈데 마음이 편안한 엄마가 있다니!

그 나쁜 엄마가 바로 저예요.

by 유난

11살 아들이 어제저녁부터 '몸이 따끔거려.' 하더니만 밤새 열이 올랐다.

자다 깨서 목 아프다며 우는소리로 물을 달라기에 따뜻한 물 한 잔을 떠다 주고 머리를 짚었더니 이마가 펄펄 끓었다.

39.3도였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39.3도



정신이 번쩍 들어서 해열제를 챙겨먹이고 아이의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팔다리를 닦아주었다. 열이 38.5도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아서 새벽 무렵 병원 예약 앱으로 진료예약을 미리 해두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축 늘어진 아이를 다독여 병원에 데려갔다.



의사선생님이 아이 목이 붓고 열이 높아서 독감이나 코로나일지 모른다고 진단 검사를 했다.


오랜만에 코를 쑤시는 고통을 감내한 아이와 병원 바깥의 건물 복도에서(간호사쌤이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나가있으라 하심) 결과를 기다렸다.


이름을 불러서 결과를 확인하러 다시 들어갔더니 검사 키트 한 줄은 확실한 빨간 줄이고 다른 한쪽은 뭔가 희끄무레하면서도 연한 핑크빛 같으면서도 애매~~~한 느낌에 원장님도, 간호사쌤도, 나도 눈을 요렇게 떴다가 살짝 실눈 뜨고 봤다가 멀리서 봤다가 가까이서 봤다가를 반복하다가 좀더 대기하기로 했다.

복도에 있는 '코로나 판별 대기석'에 앉아 기다림의 시간을 가졌다.

한참 기다려서 받은 결과는 독감 음성, 코로나 음성.

요즘 유행하는 열감기 같다고 했다.

차가운 것 먹지 말고. 먹고 자고 먹고 쉬는 게 빨리 낫는 지름길이라고 하셨다.

엄마의 이른 퇴직으로 이제서야 놀이터 자유시간이 생긴 아들은 주 5일을 놀이터에서 모든 에너지를 불사르며 논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내가 찾으러 갈 때까지 놀고, 짧은 머리에서 땀을 뚝뚝 흘릴 정도로 뛰어놀았다.

강철 체력도 아니고 그렇게 놀면 누구라도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 너도 무한 에너지는 아니겠지.'


병원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입맛이 없다는 아들이 고른 간식거리(푸딩 젤리, 주스 등등)를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담임 선생님께 아이가 오늘 아파서 결석한다고 연락드렸다.


아이는 조금 설레하는 눈치였다.

4학년이 되고 선생님도 친구들도 너무 좋고 재밌지만 학교 안가고 집에 있는 건 더 좋다고 했다.


그래. 맘껏 아프고 맘껏 쉬자.
다 나을 때까지 푹 쉬면 되지.


아이가 누워서 쉬다가 잠이 들었고, 그 옆에 나도 몸을 뉘었다.

애가 아픈데 마음이 이렇게 평온하고 평화롭다니!







직장맘으로 사는 동안 아이가 아플 때마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무슨 지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성장하면서, 계절이 바뀌면서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감기마저도 워킹맘에겐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이는 보통 하루만 아프지 않았다.

기침이나 콧물 등의 전조증상을 보이면 그날 밤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하고 한번 열이 오르면 2~3일은 아팠다.

심지어 수족구나 독감은 병원에서 진단받으면 그날부터 5일은 꼬박 가정돌봄을 해야했다.

병원도 한 번만 가는 게 아니라 증상을 보면서 몇 번 더 가야 했다.

하루 정도야 갑작스럽게 연가를 쓰고 아이를 돌볼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휴가를 내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 회사는 연차 쓰기가 쉽지 않고, 남편이 하는 업무가 거래처와 약속을 잡고 진행하는 게 많아서 조정이 어려웠다.

그래서 아이의 병간호도 거의 내가 도맡아서 했다.


학교의 특수성 때문인지 그나마 행정실은 아이를 키우는데 여러 가지 돌발 상황들을 이해받기에 수월한 조직이다.(어쩌면 코로나 이후 더 편해진 듯도 싶다.)학교에선 코로나 의심증상만 있어도 학생들을 그때그때 집으로 돌려보내고, 조금이라도 아프면 학교에 못 오게 했으니까 아무래도 이해의 폭이 넓었던 것 같다.


하지만 행정실 업무는 대체하기 어려운 업무들이 많아서 어차피 그 일은 나의 몫이고, 꼭 반드시 그날(!) 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어서 마냥 자리를 비우는 게 어려웠다.


제일 큰 문제는 행정실에 근무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이었다.

행정실은 민원업무를 하기 때문에 절대로 비워서는 안되는 공간인데 행정실 인원은 많아봐야 4명 정도라서 코로나 시기에는 정말 변수가 너무 많았다.


행정실 직원들이 워킹맘이 아닌 경우에는(남직원, 비혼, 딩크, 이미 다 키운 자녀 등등) 마냥 내 상황만을 이해해달라고 하기가 나 스스로도 눈치 보이고 힘들었고, 행정실 직원들이 워킹맘인 경우에는(한 번은 행정실 직원 전원이 초등 이하의 아이 엄마들이었다.) 이 직원의 아이도 아프고, 저 직원의 아이도 아프고, 내 아이도 아프고 그럴 때도 있었다. 직원 수가 적다 보니 이런 변수에 대처하기가 너무 어려웠었다.


하루는 어쩌다보니 행정실에 출근한 직원이 나 혼자였다. 한 직원은 일주일 연수를 갔고, 다른 한 직원은 하루 교육을 갔고, 다른 직원은 아파서 못 나왔다. 점심시간 즈음에 아이 담임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아이가 열이 나니 지금 바로 데리고 가라는 것이었다. 아이는 당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라서 혼자 집에 있어본 적도 없었고 아픈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싶지도 않았다.(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의 일이다.) 정말 발을 동동 구르다가 교감선생님한테 행정실을 지켜달라 부탁하고 급하게 조퇴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이가 아프면 그 자체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머리가 더 아팠다.

아니, 머릿속이 바빴다.


오늘은 내가 휴가 쓰고, 내일은 이렇게 하고, 병원은 또 언제 가고, 누가 데리고 가고, 오전엔 남편이 보고 오후에 출근을 하면 그 시간맞춰 내가 조퇴를 하고... 이런 것들을 계속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친정엄마가 안 계실땐 직장 다니는 내 동생마저 소환해야 했다. 어떤 날은 돌봄스케줄을 짜다가도 눈물이 나왔다.(공무원이 이런 상황인데. 사기업은 오죽할까. 이러면서 애를 더 낳으라고?)


그러니 지금 아이가 열이 나고 아픈 게 뭐 큰일이겠나.

아프면 오늘도 쉬고, 내일도 쉬고, 모레도 쉬면 언젠가는 낫겠지.

오늘도 내가 아이 옆에 있고, 내일도 내가 함께하고, 모레도 내가 돌봐주면 되지.

전혀 어렵지가 않다.


이것 또한 이른 퇴직자의 기쁨(아이가 아픈데 '기쁨'이라는 단어는 전혀 안 맞지만)일 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것.

엄마가 필요할 때 아이 옆에 있어주는 것.



퇴직 후에 알게되었다.

아이가 아픈게 그렇게 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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