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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May 06. 2023

흔하고 특별한

아빠의 죽음

내내 아빠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언제나 글을 쓰려고 하면 눈앞이 하얘지고 숨이 턱 막혔다.

쓰다만 이야기가 목구멍에 박힌 생선가시처럼 마음한구석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간암 투병을 하던 아빠가 시한부 판정을 받고 3개월 만에 돌아가시기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내 삶의 암흑기를 글로 잘 적어서 정리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빠가 ㅇㅅ병원 담당교수님으로부터 시한부 판정을 받고 온 날부터 나의 글쓰기는 시작됐다.


나의 아빠가, 몇 차례 생사의 고비에서 살아남았던 슈퍼맨 아빠가 죽을 리 없다고. 항암치료를 하고 몸관리를 잘하면 기적처럼 다시 살아날 거라고 믿었다.

그래서 매일매일 날짜를 카운트하며 번호를 매겨가며 간병일지를 기록했다.


하루하루 절박하고 심장이 쪼그라들었던 시간의 기록들



병원에선 아빠가 이대로 면 4개월, 약을 먹고 치료가 진행되면 8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우리 아빠가 어떤 사람인 줄 몰라서 하는 소리지.
우리 아빤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고.


처음엔 매일 간병일지를 작성했다.

아빠의 상태, 가족들의 간병 노력, 나의 기분, 가족들과 주고받은 단톡방 대화, 병원에서 찍은 사진, 진단서…

뭐든 기록했다.


40여 일이 지나면서 간병일지 쓰기를 그만두었다.

절망적인 하루를 보내고 잠에 들기 전, 그 절망을 다시 한번 복기해서 써 내려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친정에선 장녀였고, 6살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던 나는 그때 하루하루 매시간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느 순간 희망을 버렸다.


아… 아빠는
이제 다시 예전의 아빠로
돌아올 수 없겠구나.





아빠의 생명은 바람 앞에 위태로운 촛불처럼 흔들리며 사그라들고 있었다.

생각이란 걸 하면서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게 불가능했다.

사유를 줄이고 몸이 움직이는 대로 살아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물이 났고 밤에 눈을 감으면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기적을 바랐고 한편으로는 결말을 준비했다.

순간순간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2020년 사망원인별 사망률을 찾아보니 한국인 사망원인 1위가 암이란다.

중에서도 2위가 간암이었다. (1위는 폐암)




매일매일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병으로 죽고, 사고로 죽고, 스스로 죽고. 수많은 죽고 사는 이유 중에 암은 너무 흔하다.

병원에 가보니 아픈 사람은 셀 수 없이 많고 암환자가 넘쳐난다.


69세 당뇨병 환자였던 간암말기 성인남자의 죽음.

너무 흔해서 기사에 실린다 해도 구석에도 안 실릴 그런 이야기.

그럼에도 나의 사랑, 나의 뒷배, 우리가족의 보호자, 한때는 불사조인줄 알았던 아빠의 죽음은 내게 너무도 특별해서 나는 이제 그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이제 '아빠의 죽음'을 모르던 때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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