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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Aug 22. 2023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휴가지에서 생긴 일

8월 초에 양양로 여름휴가를 갔더랬다. 햇볕은 이글대고 모래는 뜨겁고 파도는 휘몰아치고 사람들은 바글바글 성수기의 바다였다. 오션월드의 파도풀보다 높은 파도가 내가 탄 튜브를 저 높이 올려쳤다가 떨궜다. 오랜만에 정신없이 신나는 상태(신나는데 정신없었는지도...)였다. 내 뒤에 누군가 말했다.

"저기 박나래! 박나래!"

"어디 어디?"

사람들이 한 곳을 봤다.


소리 나는 쪽을 돌아보니 해수욕장이 시작되는 쪽에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었고 그 위로 드론 하나가 윙윙 날아다녔다. 아이들이 궁금하다고 해서 파도를 거슬러 그쪽으로 슬금슬금 튜브를 밀고 갔다.


오. 진짜 박나래다.


자그마한 여자가 멀리서 봐도 땀에 흥건히 젖어 텐트를 치고 있었다. 되게 덥겠다. 일행이 있다. 오. 황보라. 되게 하얗고 이쁘네.

두 여자가 날도 더운데 물에는 안 들어오고 모래사장에서 낑낑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리자 스텝분이 경계를 알려주며 '여기 서 계시면 화면에 나올 수 있으니 물러서주세요.' 했다.


한때 유튜버가 돼서 유명해지는 게 꿈이었던 아들이 말한다.

"엄마, 티비 나오면 좋은 건데 왜 뒤로 가라는 거지?"

"우리 같은 사람이 티비에 나오면 모자이크 처리해야 되고 힘들어서 그렇지."

"난 모자이크 안 하면 좋겠다."


튜브에 몸을 싣고 놀다 보니 촬영지와는 조금 멀어졌다. 컵라면에 닭강정으로 간단히 점심을 하려고 모래사장으로 나오니 촬영지가 꽤 가깝다. 매점으로 가는 길에 잠시 서서 구경했다. 박나래의 핑크 텐트 주변을 삥 둘러 파라솔과 그늘막으로 바리케이드(?)가 쳐져있다. 스텝들이 일반인인 양 앉아있기도 하고 쉬기도 하고 구경꾼을 막는 용도이기도 한듯 했다.


점심을 먹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길에 아들과 형, 누나(지인 가족과 같이 놀러 갔다.)가 나눈 대화다.

"우리 모르는 척하고 그 앞으로 지나가볼까?"

"근데 우리가 모르지 않잖아."

"아니면 바다에 들어가서 파도에 휩쓸린 척하고 튜브 타고 가까이 가볼까?"

"파도는 반대방향인데?"

"가까이서 보고 싶당."


어차피 가까이 갈 수 없게 제작진들이 관리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얘들아, 촬영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 잔소리 한번 하고 우리 파라솔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왔다.

바다에서 튜브 타면서 저 멀리 박나래 님이 튜브 타고 몸개그하는 것도 보고, 황보라 님이 파도에 휩쓸려가서 스텝분이 다시 제자리로 튜브 끌고 가는 것도 보고. 오 신기하다 신기해. 하면서 구경했다.


"엄마, 근데 저거 뭐 찍는 거야?"

"몰라. 유튜브 같은 거 아닐까."

"나 나중에 방송 나오면 꼭 보여줘."

"알겠어. 엄마가 무슨 방송인지 한번 찾아볼게."


스텝도 많지 않아 보였고, 성수기 주말에 공중파 예능을 찍지는 않을 것 같아서 나중에 유튜브에서 검색해 봐야겠다 생각했다. 서울로 돌아와서 몇 번 '박나래 양양', '박나래 황보라'를 검색해 봤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가 금요일 밤. 나 혼자 산다를 보고 끝나서 tv를 끄려는데 '박나래, 니스 같은 양양으로 떠난 여름휴가'라고 예고편이 나오는 게 아닌가. 와우!

우리가 본 게 '나 혼자 산다' 촬영이었다고?!!!

아이의 관심은 자기가 tv에 나올까, 안 나올까였다.

"엄마, 엄마, 드론이 우리 머리 위에 계속 있었잖아."

(어. 그건 우리 찍으려는 게 아니라 전체 촬영하느라.)

"우리가 손도 막 흔들었잖아."

(다른 사람도 다 흔들었;;)

"우리 근처에서 같이 튜브도 타고 놀았잖아."

(근처에 튜브 100개.)


어차피 나와봤자 모자이크 처리될 텐데 아이도 나도 은근 방송을 기다렸다. 혹시 나올까. 궁금했다.


길고 긴 일주일의 기다림이 끝나고 다시 금요일 밤.


우리가 아는 바닷가. 우리가 놀던 파도.

우리가 느낀 그 온도와 습도, 공기의 냄새까지.

tv화면으로 다시 보니까 굉장히 신기하고 또 신선했다.


아이가 민트색 래시가드를 입고 있어서 뒤에 배경으로 보이는 사람 무리에서 민트색만 찾았다.

눈이 매직아이가 될 것 같았다.


어머. 여보. 애들 나왔다.


형, 누나와 함께 어떻게 하면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지나가던 모습이 화면에 겹쳐 잡혔다.

그 바다에 같이 놀러 갔던 지인들에게 메시지가 왔다. '애들 나왔어.'

엄마 아빠만 알아볼 수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


다음날 재방송 때 아이에게 보여줬다.

"이 장면 뒤에 나올 거야. 눈 크게 뜨고 잘 봐."

아이의 표정이 황홀하다. 얼굴도 안 보이고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는데 그래도 마냥 좋은가보다. 개학하고 학교에 가서 방학 때 있었던 일 발표할 때도 이야기하고, 일기에도 썼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이라는 동요가 티비출연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노래였다는 걸 이번에 알게 되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가사표현이 찰떡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느낀 점은 연예인 하기 쉽지 않구나, 였는데 사람이 바글바글 많고 모두의 시선이 쏠린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화면에는 사람에 많지 않아 보였지만 카메라맨의 뒤에는 구경꾼들과 피서객들이 어마어마했다. 여기저기 웅성웅성 몰려들어 구경했고 프랑스 니스 같은 느낌은 1도 없었다. (내가 가본 중에 사람 젤 많은 바다;;;)


그곳에서 기세 좋게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나라처럼 남의 시선에 신경 쓰며 사는 사람들도 없다는데 여자 연예인으로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그녀에 대한 개인적인 호불호에 상관없이) 멋있어 보였다. 나도 다음에는 래시가드 말고 기세 좋게 수영복을 한번 입어보련다.


내가 찍은 사진. 일부러 블러 처리한게 아니라 멀리서 줌으로 찍어서 뿌옇게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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