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연애 말고 환승시청!
연애하면서 바람피운 적 없음, 양다리 걸쳐본 적 없음, 환승연애 해본 적 없음. 심지어 연애가 끝나고 곧바로 이어서 누굴 만난 적도 없는 고리타분(?)하면서도 지고지순(?)한 삶을 살아왔다. 이 모든 게 내 성격 탓이라, 이런 내 성격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두루두루 영향을 끼친다.
드라마를 몹시 좋아해서 드라마시청은 나의 오랜 취미생활 중의 하나다. 드라마는 -요즘 좀 짧아지긴 했지만- 보통 16부작으로 호흡이 긴 편이라 심사숙고해서 볼 드라마를 고른다.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썼거나 하면 드라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꾹 참고 보는 편이다. 드라마를 볼 때는 1화부터 챙겨 봐야 되는 성격이지만, 가끔 너무 재밌는 작품이 나오면 입소문을 듣고 관심을 가지고 있다가 우연히 TV채널 돌리던 중에 재방송을 보고 꽂혀서 방영 중간에 보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는 OTT를 통해 이전 화를 다 몰아보고(안되면 유튜브에 있는 편집본이라도 보고) 본방 시청에 끼어든다.(갯마을차차차가 딱 그런 드라마였다.)
하지만 한 번도 드라마를 보던 중에 타 방송사의 다른 드라마로 갈아탄 적은 없었더랬다.
근데 나를 갈아타게 한 미친 드라마가 나타났다. 오랜만에 나를 드라마폐인으로 만들 것 같은 느낌이다.
(한때 '다모폐인'이었다.)
* 드라마폐인
드라마와 폐인을 합친 2000년대 유행어이다.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드라마를 열렬히 시청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심하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현실에서도 드라마를 찾게 되기도 한다. 최근엔 장시간동안 드라마만 시청하는걸 드라마폐인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 나무위키
내가 말하는 미친 드라마란, 몰입도가 미쳤고, 주인공들의 케미가 미쳤고, 시청자를 반쯤 미치게 만들어 일상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드라마다.
나는 '소방서 옆 경찰서 시즌1'을 재밌게 보았기에 '소방서 옆 경찰서 그리고 국과수'를 당연하게 보기 시작했다. 타 방송사에선 '연인'이라는 드라마를 같은 시기 시작했다. 나는 김래원과 남궁민에 대한 선호도가 비슷하다. 둘 다 연기 잘하는 배우인 건 확실하지만 나의 최애 배우는 아니라 꼭 챙겨보진 않았다.(물론 내가 보는 드라마에 나왔을 때는 연기에 감탄하면서 본다.) 수사물을 좋아하는 편이고 사극은 시작할 때 용기가 조금 필요하기에(역사적으로 해피엔딩이 어렵고 속터지는 사건들이 많아서) 나는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는 '연인'은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좋은 드라마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출 수가 없기에 내가 아무런 관심이 없어도 어느 순간 뉴스연예면에 관련 기사가 휩쓸기 시작한다. 아, 이 드라마가 요즘 인기가 있구나. 재밌나 보네. 나중에 끝나면 한번 봐야겠다. 정도로 관심이 생긴다. 인스타나 유튜브 숏츠에 자꾸 이미지나 영상이 뜬다. 습관적으로 클릭하다가 잠깐 보게 된다. 헉. 이게 뭐야. 나는 이미 남주에게 빠졌다. 이야기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연달아 몇 편의 짧은 영상을 몰아본다. 영상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도 눈앞에 드라마 속 장면만 아른거린다. 언제나처럼 이렇게 드라마 '연인'에 빠져버렸다.
남궁민이 엄청난 노력파이고 연기 잘하는 거야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렇게 몰입감 있게 연기를 한다고? 혀를 내두르며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난주에는 '소방서옆경찰서'를 본방으로 보고 '연인'을 본방 바로 이어서 하는 재방송으로 보았다. 이번주 일주일 내내 '연인' 편집본과 해석과 메이킹과 뒷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어제는 '연인'을 본방으로 보았다. 드라마 갈아타기의 순간이었다. (미안합니다, 래원씨.) 나는 아마 앞으로 연인을 본방사수할 것이다.
이 드라마를 쓴 황진영 작가는 '드라마 연인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 어디까지,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이야기다. 그리고 반대편에 사랑대신 두려움에 끌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사랑을 선택한 자의 끝이 비극이고 두려움에 압도된 자의 결말이 생존이라 해도, 그 과정에서 인간 감정의 정수를 누린 이가 누군지는 아마 본인만 알 것이다. 해서 나도 확신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삶의 목적은 생존이 아니라 아낌없이 사랑을 쏟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연인을 썼다.'라고 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모티브로 하여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보는 이에겐 어딘가 익숙하고 통속적일 수도 있는 드라마가 남궁민의 연기로, 안은진의 캐릭터로 얼마나 다채롭게 다가오는지는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만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인생에 사랑은 없다,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한 사내가
내 남자는 내 손으로 쟁취하리라, 야심 차게 선언한 여인을 만나
벼락같은 (짝)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때는 병자년,
조선이 청군에 말굽에 짓밟히는 병화를 겪으며
여자의 운명이 급류에 휘말려 떠밀려가고,
흘러가는 여인 따라,
사내의 운명도 걷잡을 수 없이 휘청거린다.
세상 모든 일에 자신만만했으나
자신이 사랑에 빠지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몰랐던 어리석은 사내,
세상 모든 사내의 마음을 사로잡고서도
자신이 진짜 연모하는 사람이 누군지 깨닫지 못했던 어리석은 여인.
사랑에 한없이 어리석었던 이 사내와 여인,
과연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 있을까?
-mbc 연인 프로그램 소개글 중-
당분간 '연인'에 빠져서 살 것 같다.
여기저기 새드엔딩의 기운이 가득하지만ㅠㅠ 드라마니까 조금은 행복하게 끝내주세요, 작가님.
<사진출처: mbc 드라마 연인 공식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