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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난 Oct 21. 2023

4년 전 돌아가신 아빠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 아침

<사진 출처: Unsplash의 Linda Perez Johannessen>



다른 때와 똑같이 시작한 하루였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고 어제 한 빨래가 한아름 쌓여있어 앉아서 개기 시작했다. 며칠새 기온이 뚝 떨어져 코끝이 시렸고 입고 있던 얇은 파자마 바지를 통해 다리에 찬 기운이 닿아 서늘했다.


고요한 가운데 빨래를 개다가 갑자기 문득 아빠가 보고 싶었다. '아빠가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문장의 끝을 맺기도 전에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당황했다. 고장 나서 잠기지 않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얼마 전에 아빠 꿈을 꾸고 깼을 때도 마음이 편안하고 아빠를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오늘의 마음은 끝도 없는 그리움과 절망감이었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볼 수 없구나. 아마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무섭도록 아프게 다가왔다.


생각해 보니 이맘때였던 것 같다. 아빠가 건강한(겉으로는 그래 보였던) 모습으로 병원에 들어갔던 게 4년 전 10월이었다. 정기적으로 간암 색전술을 하러 입원을 했는데 병원에선 이제 색전술이 불가하다고, 오래 못 살 거라고, 반년 정도 남았는데 마지막 항암치료를 해보겠냐고, 잘되면 1년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항암치료를 시작하자마자 부작용으로 간성혼수가 왔고 얼마간 의식이 없다가 겨우 회복이 되었지만 아빠는 그전의 멀쩡한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유머 있고 유쾌했던 아빠는 먼저 사라졌고, 아파서 지치고 화가 많은 아빠만 남아버렸다. 그리고 석 달 후, 남은 아빠마저 사라졌다.


딱 그때였다.


아침저녁으로 공기가 너무 차가워져 안 그래도 힘들었던 마음을 더 꽁꽁 얼어붙게 했던 그때의 온도, 습도, 공기의 냄새, 서늘했던 마음.

갑작스럽게 날씨가 추워지니 그날들이 그 시간들이 또 나를 찾아왔다.


근래에 아빠를 잃은 지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시간이 약이야. 안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괜찮아지더라고. 너무 슬퍼하지도 말고, 너무 참지도 말고 울고 싶은 만큼 울고 나면 차츰 괜찮아져. 정말 그랬다. 그래서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녀는 아빠를 잃고 슬픔의 늪에 깊이 빠져있는 상태였다.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얘길 해줘야 했다.


차마 하지 못하고 삼킨 말이 있다. 가끔은 하루종일 아빠 생각을 안 하고 지나가는 날이 있어. 그게 며칠이 될 때도 있고. 근데 또 오늘처럼 갑자기 날아온 돌에 얻어맞은 듯 아빠 생각이 나서 하루종일 힘든 날도 있어. 그게 며칠이 될 때도 있고. 가끔은 아빠 꿈을 꿔. 어떤 날은 너무 일상 같아서 똑같이 지내다가 깨서 후회를 해. 아빠한테 보고 싶다고 말하고 더 안아주고 더 많이 구석구석 꼼꼼히 보지 못한 게 후회가 돼. 어떤 날은 꿈속에서도 이게 꿈인걸 알아. 그래서 아빠를 보자마자 막 울어. 아빠 너무 보고 싶었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아빠. 아빠. 나랑 같이 가자. 하면서 막 울어. 그러다가 깨면 얼굴이고 베개고 다 젖어있어. 어차피 내 꿈인데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데 왜 반가운 아빠 만나서 울기만 했는지 또 후회를 해.


어차피 그녀도 곧 알게 되겠지.


아파트 꼭대기 층인 우리 집은 웃풍이 심해서 다른 집보다 좀 추웠다. 아이를 낳고 친정 옆으로 이사 오고 나서 추워 죽겠다는 내 말에 아빠는 단열뽁뽁이를 사다가 뒷베란다에 붙여주셨다. 나는 돌 지난 아들을 안고 뽁뽁이 붙이는 아빠의 모습을 구경했다.


작년부터 뽁뽁이 비닐이 삭아서 부서지듯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아직도 뽁뽁이 비닐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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