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로 Jan 09. 2023

다시 찾아온, 우울증

처음엔 생리 전증후군(PMS)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생리 전만 되면 내 기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을 쳤다가 하늘 위로 올랐다가, 그랬다. 참 신기하게도 생리만 시작했다 하면 기분은 다시 되돌아왔다. 굴곡을 그리던 내 기분은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묘하게 텐션이 계속 다운되어 있었다. 생각은 자꾸만 깊어지고 꼬리에 꼬리를 물어 다가오는 결론은 '그만하고 싶다'였다. 운동도 할 수가 없었다. 귀찮음이 아니라 하고 싶지가 않았다. 겨우 간 헬스장에서는 자꾸 과호흡이 찾아왔다. 결국 나는 재등록을 그만뒀다.


식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배가 고파도 뭘 삼키기가 어려웠고, 멍 때리며 먹다 보면 문득 토하고 싶은 구역감을 느꼈다. 그렇게 좋아하던 치킨도, 떡볶이도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고 삼겹살은 씹기만 하면 고기 비린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두 끼를 먹던 나는 하루 한 끼를 겨우 먹을 지경에 이르렀다. 회사에서 배가 고프면 라테로 대충 끼니를 뗴우고, 그나마도 배가 다시 고파지면 조그마한 카카오 초콜릿 한 알을 씹어 삼켰다.


하루에 어떤 시간이 즐겁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마저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길게 말을 해야 할 때면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뱉어야지만 말을 할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약이 다 떨어질 때가 돼서야 정신과에 방문했고 한참 입을 열지 못하다가 입과 눈물이 동시에 터졌다.


나의 이야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은 처음으로 내 앞이 아닌 내 옆으로 휴지를 들고 다가와 앉으셨다. 저번 상담 때 자살한 내담자의 부모님이 찾아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셨다 했다. 그때는 그저 '정신과 의사도 할 일은 못되겠구나'했지만 의사 선생님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어떻게든 나를 살리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우울증이 다시 심해졌다고 했다. 한동안 우울증보다는 불안장애가 심해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예약한 다음 상담이 아니어도 언제든 힘들면 방문하라고 했다.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나는 바쁘니 그러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다.


우울함을 느낄 때마다 먹는 약을 자기 전에 추가로 먹고도, 낮에 한 알을 더 삼켜야만 했다. 나도 이유가 알고 싶었다. 다들 힘들게 사는데 왜 나만 남들보다 더 나락으로 가라앉는지, 별 것도 아닌 일에 깊게 베이는지, 그리고 언제쯤 그 흉은 없어질는지 어느 누구보다 내가 알고 싶었다. 차라리 이유라도 알면 덜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나의 우울엔 이유가 없다. 회사 일은 힘들지만 괜찮은 연봉에 건강하게 잘 자라주는 고양이, 멀리서나마 응원하는 우리 엄마와 할머니, 그러나 나는 여전히 뒤를 돌아보며 산다. 자꾸만 뒤를 바라보며 앞으로 가다가도 걸음을 멈춘다. 다시 돌아간다.


B는 내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느냐고. 나는 한참 고민하다 대답했다. 결국 시간이 약이라고. 내가 이겨내지 못할 것 같던 아픔도 결국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시간이 지나면 지금 이 농도 짙은 우울도 한층 옅어져 있을 것이라고. 그쯤 되면 밑바닥에서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빛 한 줄기쯤 보이지 않을까 하고. 그렇게 오늘도 약 한 알과 함께 혼란한 내 머릿속을 지워보려 애를 쓴다.

작가의 이전글 이젠 정말 서른 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