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서로 안부는 주고받았지만 얼굴을 보게 된 건 2년 정도 된 듯하다. 겨울 바다가 보고 싶다는 내 말에 H는 흔쾌히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는 한 시간 반을 걸려 서울로 왔고 나를 데리고 또다시 한 시간 반을 거쳐 비린 냄새와 함께 찬 바람이 흐르는 바다로 데려갔다.
"내가 너의 차를 타보게 될 줄이야! 다 컸네!"
나보다 두 살이 어린 H는 그가 아직 대학을 다닐 때 우연히 알게 되어 친해졌다. 딱히 H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봤거나 둘이 깊은 대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내게는 어렴풋이 '사교성 좋고 열정적인 대학생'의 이미지에서 멈춰있었다. 그랬던 그가 본인의 차를 몰고 나를 바다로 데려가다니!
우리는 바다에 도착해 잠시 걸으며 바다 위에 비치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사진을 몇 장 찍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 둘은 작은 두 눈에 큰 바다를 담았다. 저 멀리, 저 높이 나는 연도 보았다. 갈매기에 과자를 주다가 무서워 도망가는 어린아이도 보았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풍경을 담아두고 카페 안으로 들어와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쓰는 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핸드폰에 글을 켜두고 민망한 표정으로 그에게 건넸다. 읽는 동안 잠시 웃기도 하고 '음'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마치 독자의 실시간 피드백을 받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H도 대학 시절 몇 명의 사람들과 짧은 글을 썼다고 하여 보게 되었다. 그 역시 핸드폰에 자신이 쓴 글을 켜두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며 자리를 떠났다.
H의 글을 읽은 나는 입을 막았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와의 갑작스러운 이별, 너무나도 낙천적이고 밝았던 그에게 이런 아픔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난 구석 하나도 없던 H였다. 사교성이 좋아 어느 누구나 그를 좋아했다. 입을 막은 손이 떨려왔다. 잠시 후에 H는 멋쩍게 웃으며 나타났고, 나는 그의 눈을 마주치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그는 큰 손으로 나를 달래며 휴지를 건넸다.
울면 안 되는데, 울면 안 되는데. 내가 이 아이 앞에서 울면 다시 그 생각이 날 텐데. 혹시라도 다 잡은 마음에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되는데. 그래도 짐작 가는 그 아픔의 크기에 눈물이 잘 참아지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엉엉 소리 내어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동안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의 이별로 인해 너에게 얕은 슬픔을 표현했다. 그게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며 어떤 말을 전달해야 할지 몰라 그저 '고생했어. 맘고생 많이 했어'라고 말했다. 그 아픔의 크기를 10대였던 그가 어찌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 시절에 H를 알았다면 나는 그를 다독여주고 싶었다. 그가 이리도 따스했던 이유는 어머니께서 남겨주신 것들을 잘 간직해서였구나. 이후에 아버지가 많이 보듬어주셨구나. 그는 아버지가 굉장히 존경스럽고 닮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 두 분은 네가 지금 너무 잘 자라주어서 굉장히 기뻐하실 거야."
나는 드디어 눈물을 그치고 그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인한 사람은 아픔 속에서 태어나는 것보다, 주변의 사랑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보다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H는 나보다 더 어른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