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재즈댄스에 빠지게 된 것은 몇 년째 나의 컬러링의 가수 Jp saxe의 노래에 맞춰 한 댄서가 춤을 추는 것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그 뒤로 바로 레슨을 받게 되었고 최근에 선생님의 부상으로 인해 한국 무용을 잠시 배우고 있었다.
춤은 참 오묘하다. 노래는 감정에 대해 직접적인 느낌이라면, 춤은 동작 하나하나에 강렬하게 표현된다. 그리고 이 몸짓들로 감정을 전달하기에 쉽지는 않다. 춤은 유연성도 있어야 하지만 코어와 밸런스가 좋아야 턴을 돌아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 또한 손 끝에서 발 끝까지 내 몸을 쓸 줄 알아야 하며, 섬세한 뻗기부터 강한 힘을 주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야 비로소 춤처럼 보인다.
매번 연습실만 가서 연습을 하던 나는 어느 순간 좁은 6평짜리 방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발 끝은 들고 점프는 하지 않는다. 아무리 잘 지어진 집이라고 해도 행여나 소음이 발생할까 봐 조심하며 춤을 춘다. 그러다 보면 팔이 굉장히 격해져 있다. 천천히, 그리고 길게 뻗어나가던 팔은 어느새 몸을 감싸기도 하고 하늘 위로 뻗기도 한다. 허리를 뒤로 최대한 젖혀본다. 하나 둘 셋넷, 박자에 맞추어 천천히 젖히던 허리를 한순간에 일으켜 세운다.
가사가 없는 피아노 연주곡에도 춤을 춘다. 가사가 없으면 동작은 더욱 클래식해진다. 어느 순간 눈을 감는다. 좁은 방이지만 부딪힐 일은 없다. 눈을 감으면 자연스레 동선은 짧아지고 동작만 남는다. 마치 무당이 무언가를 바라며 굿을 하듯, 나 역시 무언가를 바라듯 춤을 춘다. 그러나 정확하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무엇이 답답한지조차 알 수 없다. 그냥 가슴 한편이 썩어있다.
그렇게 몇 분만 춤을 춰도 금방 숨이 차오른다. 일부러 숨을 참은 탓이다. 나는 긴장하거나 힘이 들다고 느끼면 숨을 참았다 쉬는 경향이 있다. 계속 발꿈치를 들고 춤을 춘 탓에 종아리가 아파온다. 어디서 잘못했는지 왼쪽 검지 손가락이 부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바탕 아무 의미 없는 몸짓을 내뱉고 나면 조금 살 것 같다.
내 춤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어쩌면 전문가들이 본다면 저건 춤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추는 춤은 거의 몸부림에 가깝다. 어떤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일까. 과거에 잃어버린 것, 사실 내가 가지지 못한 슬픔보다 내가 가진 것을 잃어버린 슬픔이 더 크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괴로워 몸부림친다. 거울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내 방에서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몸부림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