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로 Dec 05. 2020

엄마, 나 많이 불안해

미쁜 편지 # 8

엄마, 나야. 응응, 퇴근했어.

밥 아까 먹었지.

요즘 일하면서 밥은 더 잘 챙겨 먹어.

할머니는? 아, 괜찮아?

감기 안 걸리셨고?

아빠는? 며칠 전에 밤에 전화 왔던데.

술 먹은 것 같아서 안 받았어.

엄마는 밥 먹었어?


무슨 일 있기는. 별 일 없어.

그냥 전화했지.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응, 진짜 별 일 없어.

요즘 스트레스 진짜 안 받는 거 같아.


(엄마의 일상 이야기)


(중략)


응, 그랬구나. 아 정말?

엄마, 나 사실 말이야.

며칠 전 밤에 갑자기 또

공황장애가 찾아왔어.

막 갑자기 너무 불안하더니,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숨이 턱 막혀왔어.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불안해져서

세상 모든 불안이 나를 덮칠 것 같았어.

급하게 약을 먹었는데

그래도 잠이 잘 들지 않아서 힘들었어.


나는 항상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이었잖아.

금방이라도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사람이었잖아.

근데 갑자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한 거야.


얼마나 더 큰 불행이 나를 찾아오려고

이렇게 고요한 걸까 하고.

일상의 소중함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굉장히 힘들었었나 봐.


그저 이런 고요함을 즐기며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건데.

나는 아직 그게 잘 안되나 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을 대비해서

최악을 상상하며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가 봐.


엄마, 나 이제 아픈 거 다 끝난 거겠지?

이젠 정말 이렇게 평화를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해도 되는 거겠지?

이제 그만 불안해해도 되는 거겠지?


응, 엄마. 응, 그럴게.

이제 슬슬 잘 준비해야겠다.

엄마도 잘 자. 나중에 전화할게.

응응, 응.

작가의 이전글 뚱뚱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