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쁜 편지 # 8
엄마, 나야. 응응, 퇴근했어.
밥 아까 먹었지.
요즘 일하면서 밥은 더 잘 챙겨 먹어.
할머니는? 아, 괜찮아?
감기 안 걸리셨고?
아빠는? 며칠 전에 밤에 전화 왔던데.
술 먹은 것 같아서 안 받았어.
엄마는 밥 먹었어?
무슨 일 있기는. 별 일 없어.
그냥 전화했지.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응, 진짜 별 일 없어.
요즘 스트레스 진짜 안 받는 거 같아.
(엄마의 일상 이야기)
(중략)
응, 그랬구나. 아 정말?
엄마, 나 사실 말이야.
며칠 전 밤에 갑자기 또
공황장애가 찾아왔어.
막 갑자기 너무 불안하더니,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고
숨이 턱 막혀왔어.
갑자기 모든 게 너무 불안해져서
세상 모든 불안이 나를 덮칠 것 같았어.
급하게 약을 먹었는데
그래도 잠이 잘 들지 않아서 힘들었어.
나는 항상 불안하고 불행한
사람이었잖아.
금방이라도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그런 사람이었잖아.
근데 갑자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게 오히려 더 불안한 거야.
얼마나 더 큰 불행이 나를 찾아오려고
이렇게 고요한 걸까 하고.
일상의 소중함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나는 굉장히 힘들었었나 봐.
그저 이런 고요함을 즐기며 감사하며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건데.
나는 아직 그게 잘 안되나 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불행을 대비해서
최악을 상상하며
그렇게 살아와서 그런가 봐.
엄마, 나 이제 아픈 거 다 끝난 거겠지?
이젠 정말 이렇게 평화를 느끼며
살아있음에 감사해도 되는 거겠지?
이제 그만 불안해해도 되는 거겠지?
응, 엄마. 응, 그럴게.
이제 슬슬 잘 준비해야겠다.
엄마도 잘 자. 나중에 전화할게.
응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