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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Dec 08. 2020

엄마와 나는 이별을 할 거야

가족들과 떨어져 산지 어느덧 10년이 다 되어간다. 어깨너머로 배운 집안일로 나는 내 옷들을 빨래를 하고,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가며 해온 요리 경험 덕분에 어디 가서 제일 잘하는 요리를 김치찌개라고 자랑할 수 있게 되었다. 과일은 식초를 몇 방울 떨군 물에 담가 세척하면 좋다는 것도 배웠고, 베이킹소다는 만능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엄마의 보살핌을 조금씩 벗어나 홀로 자립한 것이다.


엄마와 나는 표현이 많은 사이는 아니었다. 그냥 잔소리 많은 친구 같은 느낌이었다. 용건이 있으면 전화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고, 그마저도 통화가 긴 편은 아니었다. 각자의 삶이 참으로 고단하고 바빠 어떤 날은 무심코 들여다본 핸드폰의 통화기록에 엄마 이름이 한참이나 뜨지 않았음을 2주 만에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우리가 점점 서로를 찾게 되었다. 고단한 삶 속에 서로를 더욱 찾게 되었다.


일주일 전부터 엄마가 싸준 김밥이 먹고 싶었다. 김밥 얘기로 한참이나 통화를 하고, 며칠 후 택배가 왔다. 김밥은 쉬어버리니 보낼 순 없었던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무 생채와 햄 통조림, 진공 포장된 떡볶이 떡과 떡국 떡을 보냈다. 거기엔 뜬금없이 엄마 회사에서 엄마 이름이 박힌 탁상달력도 들어 있었다. 그랬다. 엄마는 뭐 하나라도 필요한 듯싶으면 박스에 하나씩 하나씩 넣어 보냈다. 혹은 박스가 크면 뭐라도 꽉꽉 채워 보내야겠다 싶은 것 같았다.


엄마의 택배는 항상 비닐 테이프가 잔뜩 붙어 있었다. 혹시라도 배송 중에 박스가 터질까 봐 그러신 듯했다. 옛날부터 그랬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날이면 박스 밑바닥에 테이프를 과하다 싶을 만큼 붙이셨다. 엄마는 항상 어떠한 문제도 만들려고 하지 않으시는 분이었다. 비록 인생에 큰 실수는 몇 번 있었지만.


엄마가 보낸 박스를 뜯어내며 마음 한 구석에 습기가 차는 걸 느꼈다. 나는 과연 앞으로 엄마와 얼마나 함께 있을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엄마의 택배를 받고, 몇 번이나 엄마의 전화를 받아볼 수 있을까. 아마 별 일이 없다면 우리 엄마는 나보다 먼저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엄마보다 내가 먼저 작별인사를 하겠지. 어찌 됐건 우리는 이별을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엄마에게 보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나도. 다 같이 살면 좋겠다.'라고 답장이 왔다. 별 다른 일이 없다면 나는 엄마와 다시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이제 이 곳이 나의 삶이 되었으니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곳에 있다. 엄마의 옆에. 이별을 하기 전까지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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