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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Feb 01. 2021

나의 라스트 홀리데이

혼자 놀기의 제왕이 된 나는 주말이면 하루에 많게는 영화 두 편을 보고, 예능을 켜놓고 밥을 먹고, 글을 쓸 때는 유튜브에서 추천 음악을 틀어놓는다. 원래도 영화는 좋아했지만 혼자 영화를 보는 일은 드물었는데 어느샌가 혼영이 익숙해진 나는 주말 전날부터 무슨 영화를 볼지 찾아보는 일에 설레 하게 되었다.


어젯밤 내가 본 영화는 '라스트 홀리데이'. 영화의 여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말하지 못하고 상사의 구박을 들으면서도 하고픈 말은 꾸욱 참아내는 그냥 평범한 현실 속 우리다.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녀는 '가능성'이란 앨범을 만든다는 것. 언젠간 이루고자 하는 것들을 담아놓은 책이다. 요즘의 버킷리스트의 발전된 형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어느 날 그녀는 회사에서 머리를 부딪쳐 쓰러지게 되면서 검사를 게 되었고 그 결과 불치병에 걸려 길어야 4주라는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된다. 소식을 들은 날 그녀는 술을 한 잔 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이후 무언가에 홀리듯 은행 계좌의 모든 돈을 찾는다. 그리고 '가능성'에 스크랩해놓은 그녀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러 떠난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돈을 왕창 쓴다. 무례한 승객 때문에 일등석으로 바꾸고, 최고급 호텔 귀빈실에서 묵으며 최고급 옷을 사 입고 본인이 존경하는 셰프의 모든 메뉴를 시켜서 먹는다. 그녀에게는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시간이 아까웠기 때문에.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녀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나쁜 상사를 벌 받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 용기를 주며 그 영화의 마지막 끝에는 검사 결과가 잘못 나온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짝사랑하던 남자와 함께 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굉장히 짤막하게 정리했으니 직접 보길 바란다).


내게 만약 주어진 시간이 4주라면 나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하게 될까. 사실 나는 그녀처럼 모아둔 돈이 많지는 않으니 다이내믹한 무언가를 해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게 쌓여있던 이 감정들을 하나씩 풀어야겠지.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응어리져있던, 가끔은 명치까지 꽉 차올라 음식조차 삼키기 어려웠던 이 감정들 말이다.


나는 유서 대신 편지를 쓸 것이다. 할머니에게 한 장, 엄마와 아빠에게 한 장, 철없는 동생에게 한 장. 내용에는 사랑한단 말과 함께 미웠었던 내용도 써야겠다. 왜냐면 살아생전에는 그들의 미안한 표정을 볼 수 없어 차마 표현할 수 없었던 내 마음이니까. 아, 당연히 나의 고양이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도 써야지.


그다음에는 그에게 가야겠다. 내 아픈 손가락. 가서 미안했다고 말해야지. 많이 사랑했었다는 말과 함께.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야겠다. 게임과 술은 줄이고 꼭 그만의 가게를 내길 바란다는 말도 해야겠다. 오지랖 일지는 모르지만 언젠간 당신의 아버지와 당신의 미움이 정리되길 바란다는 말도.


바다를 보러 갈 것이다. 추운 날이어도 상관없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바다내음을 맡고 바닷바람을 쐬며 내 눈에 한가득 푸른 바다를 저장하고 싶다. 그 이후엔 별과 달을 보러 갈 것이다. 서울에서 말고 강원도의 어떠한 산에 올라 좀 더 가까이 봐야겠다.


우리에겐 사실 4주의 시간이 아닌 하루의 시간만 남아있을 수도 있다. 사람의 일은 단 1분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가 후회를 하는 이유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 그러니 나는 조만간 바다를 보러 가야겠다. 눈에 푸른 것을 담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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