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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Feb 16. 2021

할머니, 나도 데려가

32년생, 올해 아흔의 나이를 맞이한 우리 할머니는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었다. 골다공증은 조금 심하시고 허리는 꽤나 굽어 원래 나보다도 컸던 키가 이제는 내 어깨를 간신히 넘으신다. 약간의 건망증 비슷하게 있으시지만 기억력도 문제없으시고 치아도 건강하신 편이라 틀니도 하지 않으셨다. 어느덧 꽤나 어른이 된 나는 우리 할머니처럼만 늙어도 복일 거라 생각했다.


방 세 개의 본가에 이제 내 방은 없다. 하나는 할머니방, 하나는 부모님 방, 하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 동생의 방이다. 1년에 기껏해야 두세 번 오는 나는 본가에 오면 동생의 방에서 자고 동생은 할머니 방에서 잔다. 불면증이 심하고 잠귀가 밝아 예민해 쉽게 잠에서 깨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도 어릴 적에는 할머니와 함께 방을 썼다. 내가 잠들기 전까지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럼 비교적 쉽게 잠에 들었다.


동생의 방에 들어가 잠을 자기 전에 할머니 방에 들러 한참 애교를 떨었다. 벌써 서른이 다 된 나이인데도 할머니 앞에서는 일부러 어린애처럼 굴었다. 그럼 할머니는 정말 나를 어린애라도 된 듯 품에 안고 좋아하셨다. 어느 할머니들과도 같이 우리 할머니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우리 손녀 결혼하는 건 봐야 할 텐데, 우리 강아지 행복한 건 봐야 할 텐데, 우리 공주님 행복하게 사는 건 봐야 되는데.


눈물 많은 우리 할머니, 또 그 얘기를 하시다 눈물이 터지셨다. 나는 지금 이렇게 어른이 되었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울면 같이 따라 운다. 나도 모르게 '할머니, 나도 데려가'라고 말하며 엉엉 울었다.


"누가 그런 소리하래"

"할머니, 죽으면 그냥 나 데려가. 나 할머니 따라갈래. 나 두고 가지 마"

"엄마가 이 소리 들으면 슬퍼해. 그런 소리말어"

"아냐, 엄만 동생 있잖아. 괜찮아"


피를 흘리며 산다. 남들 눈엔 보이지 않는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가고 있다. 박박 지워내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미움들. 억지로 지우려다 피부가 다 벗겨져서야 '아, 쓸모없다. 언젠간 아물겠지'하며 안고 산다. 많은 양의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오다가 이제야 몇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아프다. 이런 내가 버틸 수 있는 건 할머니가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10번의 전화라면 7번은 울면서 끊으신다. 나 때문에 이렇게나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할머니의 전화는 항상 마음이 아프다. 내가 빨리 행복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아 할머니를 자꾸 울게 만든다.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는 살아갈 용기조차 사라지게 만든다. 내가 할머니 없이 행복해지려고 노력할까 하면서.


나의 이 말에 할머니는 입술을 깨물며 끅끅 울음을 참아내셨다. 잘못된 말인 줄 알면서도 차라리 이 말로 할머니가 더 사셨으면 하고. 할머니가 살아갈 이유가 나이고, 나 역시 살아갈 용기가 할머니라면, 서로에게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존재라면 죽을 생각보다 조금이라도 더 살아갈 생각을 했으면 하고.


세상은 그렇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존재가 있음에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나의 행복이 곧 그 사람의 행복임을 깨닫는다. 그날 밤, 나는 마저 토해내지 못한 울음을 동생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토해냈다. 할머니, 나의 할머니. 할머니, 나의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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