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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로 Mar 23. 2021

내가 우울에게서 벗어난 방법

사실 꽤나 오래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렸다. 물론 현재도 약을 복용 중이긴 하지만 상태는 굉장히 호전되어 지금은 불면증만 조금 있는 상태다. 반년 전만 해도 나는 길을 걷다가도 공황장애가 왔고 심각해진 불안장애 때문에 밤마다 심장이 터질 것같이 뛰곤 했다. 또한 우울함에 허덕이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약을 찾아 먹곤 했다.


그러던 내가 아주 빠른 속도로 괜찮아지고 있었다. 내가 굳이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주변에선 내게 좋아 보인다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의 옛 모습을 보아온 지인뿐만 아니라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회사에서나 먼 지인들에게도 내 모습은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내가 한창 우울을 업고 다녔을 때, 나는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컴퓨터 앞에 앉아 보지도 않는 예능이나 영화를 틀어놓거나 침대에 누워있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걱정했다. 나는 주말에 잠시도 집에 붙어있지 않고 나가서 활동을 하던 사람이었으니까. 점점 살이 불어갔다. 잘록한 허리를 자랑하던 내가 어느새 옆구리살과 뱃살이 붙어있고, 헐렁하던 바지는 허벅지가 드러나게 딱 맞았다. 그래서 나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우울함을 느낄 것 같은 그 찰나에 몸을 벌떡 일으켜 샤워를 했다. 그것만으로도 기분은 아주 나아졌다. 그리고 청소를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할수록 청소를 아주 오래 했다. 설거지부터 청소기, 걸레질. 그러고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으면 홀딱 벗고 화장실 청소를 했다. 


음악을 분류했다. 슬픔에도 무게가 있고 색깔이 있다. 잔잔하게 위로받고 싶은 날부터 엉엉 울고 싶은 그 슬픔까지 다독여줄 음악들을 분류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와 가수가 한눈에 보였고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 유사곡들을 찾기 시작했다. 듣고자 하는 음악이 풍부해지니 감정이 풍부해졌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니 차츰 즐거운 노래도 찾아가고 있었다. 처음엔 가볍게 몸을 흔들 수 있는 보사노바를 찾다가 그 이후엔 잘 듣지도 않던 걸그룹 노래도 듣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다양한 내 감정을 찾을 수 있었다.


돈을 썼다. 나는 주변에서 누구나 아는 절약녀다. 타인과 만나는 약속이 아닌 이상 내게 쓰는 돈은 쓰질 않았다. 반년 동안 양말 한 켤레 사지 않는 적도 있었고, 속옷은 와이어가 완전히 휘어 입을 때 통증을 느껴야만 바꿨다. 그런 내가 돈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작은 돈을 써도 좋다. 처음엔 과일을 샀다. 그 이후엔 한 달 빠르게 봄 카디건을 샀고, 그 이후엔 내가 하고 싶었던 현대무용을 배우게 됐다. 돈을 아껴가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조금씩 나를 위한 소비로 바꿔가니 기분이 좋았다. 적절한 소비는 정신건강에 이롭다.


지금의 나는 꽤나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런 기분을 처음 느껴보았다. 주변에서 잘 지내냐고 물어보는 대답엔 항상 '늘 똑같아. 그저 그래. 너는?' 하며 나의 이야기를 피하기 일쑤였는데, 어느새 나의 대답은 '살만 해'가 되었다.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한 것을 시작으로 우울에서 벗어나 지금은 매주 현대무용을 배우며 취미를 즐기는 직장인의 삶을 영유하고 있다. 우울함을 느낀다면 지금 당장 화장실로 가자. 따뜻한 물에 샤워하며 우울을 녹여버리자. 시작은 사소하지만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게 바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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