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통화를 하지 않은지 5일이 지났다. 문득 전화기록을 내려다보다 발견했다. 무의식 중에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목소리. 엄마가 이렇게 전화를 받을 때면 무슨 일 있냐고 묻기도 두렵다. 무슨 일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냥~ 할머니 병원 모셔다 드리고 왔어."
"할머니? 왜?"
"식사도 잘 안 하시고 그러다 보니 기운 없으셔서 수액 맞으러 모셔다 드리고 왔어."
"식사를 왜 안 하셔?"
"속상해서 그러시지."
할머니가 입맛을 버릴 정도로 속상한 이유는 바로 나였다. 할머니에게 나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고 자신의 자식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어린아이였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걱정하는 건 또 나였다. 할머니와 나는 늘 그렇게 서로를 걱정하며 산다. 통화를 할 때면 목소리 가득 습기를 안고 말한다. 서로가 울먹거림을 들킬라 항상 통화는 급히 종료가 되었다.
엄마는 회사에서 속상했던 일을 말한다. 실적이 꼴찌인데 회사에서 1등부터 꼴찌까지 순위를 턱 하니 문에다 크게 붙여놨다고 한다. 살면서 처음 꼴찌를 해봤다고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옆집 아줌마가~'하는 듯한 어조로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도 속상함과 창피함이 문득문득 말 끝에서 삐죽 입을 내밀었다. 아빠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고모네와 싸웠던 이야기, 월급에 관련된 이야기 등등 항상 우리 집은 약자였다.
"행복할 날이 오겠지~ 항상 안 좋은 일만 있겠어? 그렇지?"
회사의 빈 방 한 칸에서 통화를 하던 나는 대답도 못하고 눈물만 뚝뚝 흘렸다. 속상함과 미움, 그리움, 슬픔. 나의 과거는 현재 진행형이기에 완벽한 과거가 되기 위해서는 무던히 노력해야만 한다. 엄마와 나는 언제나 과거를 들쳐 메고 가는 사람이기에 가라앉지 않으려 두 손을 힘 있게 잡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울어야 한다. 이렇게라도 울고 속이라도 시원해지면 떨리는 입술과 붉은 눈망울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너랑 나는 속상한 일 있을 때마다 전화하는 거야. 서로에게~ 알았지? 우리 둘은 그러는 거야."
그러자 하고 끊었다. 티슈를 몇 장 뽑아 들어 눈물을 닦아내고 코를 팽하고 풀었다. 조금 추스르고 다시 방을 나가 나는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해야 한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결국 우리는 내일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현재 진행형인 과거를 도려내려 무던히 애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