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이로 Apr 04. 2021

죽고 싶어서 운동을 했다

작년 공황장애와 불안장애가 심하게 온 이후로 이상하게 생리 전 증후군(PMS)이 심해졌다. 차라리 식욕이 왕성해지면 먹으면 해결되고, 수면욕으로 오면 자면 되는데 나의 생리 전 증후군은 극심한 우울감이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은 그냥 나 빼고 다 행복해 보여서, 혹은 지하철에 사람이 많아서,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 우울은 말도 안 되는 덩어리들을 갖다 붙였다. 나를 배신하고 떠나간 그 사람이 너무 미워서, 얼른 그 사람이 망하는 걸 봐야 할 텐데 아직 망하지 않아서. 평소엔 생각도 잘 안 나던 옛 남자들 생각도 마구 났다.


이런 날이면 혹시라도 나의 우울이 회사에서 폐를 끼칠까 신경을 곤두서게 된다. 최대한 침착하려고 애쓰고 평소와 같이 웃어보려 한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몸보다 정신이 꽤나 지쳐있다. 금방이라도 이 우울한 덩어리들을 떼어내려 내 온몸을 두들겨 팰 것만 같았다. 문득 가방을 대충 던져놓고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이러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내가 배운 하나,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게 차라리 낫다. 입술을 앙 깨물고 운동용 속옷과 레깅스로 갈아입었다. 요가매트를 깔고 몸을 풀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제일 힘들다는 영상들을 골라보며 홈트레이닝을 시작했다. 15분 뒤, 땀이 요가매트 위로 후둑후둑 떨어졌다. 나도 모르게 출산하는 사람처럼 호흡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배가 찢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살 것 같았다. 아니, 살아있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죽고 싶었는데 살아있음을 느끼니 후련했다.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물 한 컵을 마시고 바로 샤워를 하러 갔다. 미지근한 물에 다 녹여본다. 우울, 미움, 분노, 잠깐의 혼란한 감정 때문에 내게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샴푸질을 열정적으로 하며 머릿속에서 크게 외쳐본다. 호르몬 따위에 지지 말아야지. 양치질을 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개운하다. 그래, 사실 어쩌면 죽고 싶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은 지금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고. 그렇다면 뭐든 실행해봐야 한다. 우울은 내가 가만히 있을수록 좋아한다. 몸을 움직여 탈탈 털어내야 하고 물로 씻어내야 한다. 어찌 됐건 우리는 또 힘차게 내일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과거는 현재 진행형이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