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너무 바빴다. 정말 밥을 먹는 시간마저도 빼서 일을 해야 할 정도였다.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아침 일찍 본가의 아빠로부터 온 부재중 전화로 나는 아빠가 다시 술을 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술만 먹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 전화를 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물으니 다시 술을 먹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었다고 했다. 집 마당에 누워있는 걸 막내 고모부와 팔다리를 나눠 들고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고 했다. 스트레스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참아낼 수 있는 한계가 아니었나 보다.
새벽에 예능을 틀어놓고 잠시 생각을 멈추었는데 가슴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아 급하게 공황장애 약을 찾아 먹었다. 심박수를 체크하니 100이 넘었다. 약효가 돌기도 전에 공황 발작이 일어났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크게 쉬어도 폐까지 산소가 들어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팔다리가 저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그나마 택시를 타면 5분이면 올 수 있는 친한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괜찮냐는 질문에 대답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숨을 가쁘게 쉬고 있었다. 갑자기 추웠다. 몸이 덜덜 떨려 핸드폰을 잡을 수도 없어 침대에 내려놓고 통화를 했다. 간신히 입을 열고 혹시라도 아무 소리가 안 나면 바로 119에 신고를 해달라는 말을 전했다. 비닐봉지를 잡고 숨을 크게 반복해서 내쉬었다. 눈 앞이 자꾸만 흐려졌다. 계속 추웠다. 발치에 있는 이불마저 손으로 잡기 어려웠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비닐봉지 덕분인지 약 덕분인지 호흡이 조금씩 돌아왔다. 어느새 나는 울고 있었다. 괴로워서 눈물이 났던 것인지, 죽음을 느꼈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호흡이 돌아오고도 나는 계속 끅끅 거리며 울었다. 지인은 지금 택시를 타고 우리 집으로 오겠다고 했지만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나의 삶은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즐거워하는 일들도 많이 찾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공황 발작 한 번으로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랬다. 나는 아직 과거의 찌꺼기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했다.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언제든 트라우마에 휘영청 뿌리까지 뽑혀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자만했다. 마음의 상처는 쉽게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자만했다. 시간을 들여 소중하고 섬세하게 나를 돌봐야 했다. 천천히 나를 달래야 했다.
그다음 날, 나는 아무렇지 않게 회사에 출근을 했다. 그리고 바로 팀장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업무의 강도가 높으나 그에 비해 데드라인은 현재 빠듯한 상태고 팀원이 잘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업무가 나에게 과중되고 있음을 조곤조곤 설명했다. 팀장님은 다행히 나를 충분히 이해하고 솔직하게 말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당장 그 순간이든, 그 이후든.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래도 여전히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