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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영양 등급 표시 제도 Nutri-Score

A라고 다 좋은 건 아니다?

by UVINO

유럽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마트에 발을 들였을 때였어요. 휘황찬란한 진열대 사이로 제 눈길을 사로잡은 낯선 표식이 있었죠. 바로 초록색 A부터 빨간색 E까지 단계로 나뉜 Nutri-Score였습니다.


한눈에 봐도 A는 건강하고 E는 몸에 좋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등급, 과연 그럴까요?


이번 글에서는 Nutri-Score가 정확히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어떤 방식으로 계산되는지,

그리고 제가 유럽 마트에서 실제로 Nutri-Score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까지 소개해 보려 합니다.



Nutri-Score란?


Nutri-Score는 식품 포장 앞면에 기재되는 영양 등급 표시 시스템이에요.

2017년, 프랑스 보건부가 공식 도입하면서 부터 처음 시작되어 지금은 유럽 여러 나라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죠.


현재 Nutri-Score를 사용하는 나라들은 프랑스를 포함하여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는 EU 차원의 의무제도는 아니에요. 각국이 자율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이라,

같은 유럽이라도 Nutri-Score가 없는 나라나 제품도 여전히 많습니다.


이렇게 색상과 알파벳으로 쉽게 구분되니, 복잡한 영양 성분표 대신 빠르고 직관적으로 건강에 괜찮은 제품인지를 바로 판단할 수 있어요.




Nutri-Score 계산 방식은?

Nutri-Score 계산 방식

Nutri-Score는 단순한 칼로리 계산이 아니라, 좋은 성분과 제한해야 할 성분을 구분해서 점수화합니다.


계산 원리를 요약하자면

좋은 성분 (+ 가산점): 채소·과일 함량, 섬유소, 단백질, 견과류 등

제한 성분 (- 감점): 설탕, 포화지방, 나트륨, 총 열량 등

총점 = 제한 성분 - 좋은 성분

결과에 따라 A ~ E 등급으로 환산돼요.


예를 들어, 고단백 저지방 요거트는 A 혹은 B level일 가능성이 높고,

설탕 함량이 높은 가공 식품 (초콜릿, 디저트류)은 D, E로 나오는 구조에요.




Nutri-Score의 한계는?

Nutri-Score의 한계

하지만 완벽한 기준은 아니에요.

Nutri-Score는 같은 식품군끼리 상대적으로 평가되기 때문에, A 등급이라고 무조건 건강식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시리얼 제품 사이에서도 경쟁사 시리얼 대비 설탕이 조금 들어 갔다는 이유만으로 A 등급 시리얼이 생기고 초콜릿이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E 등급 시리얼이 생길 수 있는 거죠.


특히, 유럽 각국에는 수백 년 이어져 온 지역 전통 식품 (Protected Designation of Origin, PDO)이 다양한데요. 이런 전통식품은 대부분 낮은 Nutri-Score를 받게되어 갑론을박이 많습니다.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디 파르마 (Prosciutto di Parma), 프랑스의 로크포르 치즈 (Roquefort), 그리스의 페타치즈 같은 제품은 일반적으로 소금, 지방, 단백질이 풍부하고, 제조 과정이 길며, 영양 균형은 현대적 기준에 맞지 않지만 품질과 전통성이 뛰어나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Nutri-Score는 설탕·지방·나트륨이 많으면 무조건 감점이에요. 그래서 문화적 충돌도 불러 일으킵니다.

이탈리아, 체코, 루마니아 등 일부 국가는 Nutri-Score가 단백질 함량 등은 무시하고 나트륨이나 지방만 강조해 전통 가공식품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단순히 제품 패키징에 적혀져 있는 등급과 색만 보고 소비자가 "어라? 이게 건강에 나쁜 식품인가?"라고 오해하게 되면 수출에 불이익이 생기거나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독일 제품만 건강식품처럼 보이게 되는 역차별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탈리아는 Nutri-Score에 반대하며 Nutrinform Battery (영양 정보를 배터리 모양으로 시각화) 를 도입시켜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나뉘어 EU 차원의 통일 Nutri-Score 도입에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Nutrinform Battery


또한, 이 제도는 제조사 선택사항이라 모든 제품에 표시되는 것도 아닙니다.

International 스낵회사인 Lay‘s에서 만든 감자칩은 Nutri-Score가 패키지에 기재되어 있는 반면, 슈퍼마켓에서 제조한 동일한 맛의 PB 감자칩은 Nutri-Score가 기재되어 있지 않아 브랜드간 비교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는거죠.



실제 유럽 소비자들은 Nutri-Score에 영향을 받을까?


제가 다양한 유럽 국가의 마트에서 소비자들을 관찰하며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국 소비자에 비해 영양 정보에 대한 관심이 적고 성분표를 일일이 확인하는 경우가 드문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Nutri-Score의 직관성이 복잡한 영양 성분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느꼈습니다. A~E로 구분된 직관적인 색깔 시스템이 영양 지식이 없거나 시간이 부족한 소비자들조차 제품을 쉽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실제 프랑스 공공기관인 Santé Publique France (2020)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인의 90%는 Nutri-Score가 제품의 영양적 품질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으며

프랑스인 2명 중 1명 이상은 Nutri-Score 덕분에 구매 습관을 하나 이상 바꾸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Peters & Verhagen (2022)의 연구에서는 소비자의 혼합된 행동 양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비자의 반응은 단순히 A니까 건강해, E니까 안 좋아가 아닌 훨씬 더 심리적이고 상대적이었는데요.

대학 카페테리아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건강식품 구매가 10% 증가했지만 건강하지 않은 제품 구매는 줄지 않았고, 슈퍼마켓 실험에서는 Nutri-Score의 영향이 일부 식품군에서만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중간 등급인 B/C Level인 제품에는 Nutri-Score가 더 좋은 제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태도가 나타나지만, 낮은 등급인 D/E Level 제품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언제 Nutri-Score를 볼까?


이는, 제 소비 경험과도 일부 일치하는 연구로 볼 수 있겠는데요.


저는 상대적으로 건강한 식품군인 요거트, 치즈, 프로슈토 같은 냉장 유제품, 단백질 식품을 구매할 땐 가격이 조금 높더라도 더 등급이 좋은 A~B 제품을 구매하려고 노력합니다. 체감상 가공 단계가 적고, 지방이나 단당류가 낮은 제품들이 확실히 소화도 빠르게 되고, 더 건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쿠키 & 디저트류같은 hedonic 제품 구매 시에는 Nutri-Score가 D 이던 E 이던 상관없이 저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게 되더라고요.


이는, Stiletto et al., (2024)의 연구와 일맥상통합니다.

소비자에게 Nutri-Score가 객관적 정보일 뿐만 아니라 심리적 반응 유도 장치 역할을 한다는 거죠.

즉, 소비자가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죄책감, 정당화, 구매 행동이 바뀌게 됩니다.

즉, 케이크처럼 건강하지 않을 것 같은 제품이 실제로 D등급 인경우 죄책감이 증가하여 "역시 먹으면 안되겠다.."라는 인식을 통해 구매 의도가 감소합니다. 반면, 포화 지방이 많이 들어 Nutri-Score가 낮을거라고 생각했던 감자칩이 기대보다 높은 등급을 받은 경우 "별로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라는 인지를 하게되어 자기합리화와 건강 면죄부가 작용되어 구매 의도가 증가한다는 것이죠.


이를 통해 Nutri-Score의 영향력은 모든 제품에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제품 종류에 따라 반응도 달라집니다. 마치 요거트를 구매 할 때와 초콜릿을 구매 할 때 심리적 작용이 다른 것 처럼 말이죠. 제품의 건강 이미지, 브랜드, 기대치, 맥락, 노스텔지어에 따라 라벨 효과가 유연하게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Nutri-Score 같은 Front of Pack (FOP) 라벨은 정책적으로 유의미한 도구임은 틀림없습니다. 단순히 라벨만 붙이는 것을 넘어 소비자 기대와 인식의 차이를 고려한 기업의 마케팅 전략에도 유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Nutri-Score는 단순한 영양 등급을 넘어, 소비자의 기대, 감정, 그리고 행동까지 연결되는 흥미로운 심리적 도구임을 확일할 수 있습니다. 식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재정의하고, 더 나아가 마케팅 전략에도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는 Nutri-Score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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