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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민수 Jul 27. 2022

글쓰기가 왜 어려워요?

완벽주의 or 방어주의

18년 04월 19일 작성했던 글로, 4년 전에도 글에 대한 생각과 실천을 다지려 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다음날, 브런치 작가 신청이 좌절되면서 잊고 있다가 다시 꺼내보니 묘하네.




오늘, 아니 어제 받은 질문과 내가 즉각적으로 한 답변이었다.


그러게. 왜 글쓰기가 어려울까. 막상 대답은 했지만 계속 되묻게 되는 질문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비교적 글을, 적어도 '많이'는 쓰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때만 봐도 글의 형태를 지닌 아웃풋이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하나의 글을 상당히 오랜 시간 붙들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칠 줄도 알던 그런 주니어였다. 근데 왜 어려워진 걸까?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내가 쓴 글에 누가 댓글을 달았다. 글의 내용과 댓글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 글에 반하는 의견을 표한 댓글이었다. 문제는 나의 옹졸함도 일부 있었지만, 그분이 내 글의 의도를 잘못 이해했단 점이었다. 더 엄밀히 말해, 나는 내 글이 그렇게 읽히리라 아예 생각하지 못했기에 다소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마디로 글을 잘 못쓴 결과였다. 나는 일단 얼버무리는 댓글을 달아야 했고, 그것이 온라인에서 대외적으로 쓴 어떤 글로 인해 내가 받은 첫 상처였다. (다행히 학교 수업 커뮤니티로 그 파급력은 미미했다.)


여기서 좀 더 생각해볼 점은, 왜 이것이 최초의 상처였는가이다. 그 이전까지는 인터넷 활용도가 낮았기 때문에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글을 쓸 일이 거의 없었고 이를 누가 볼 이유 또한 적었다. 또 초등학교 언젠가는 내 글이 나이 답지 않다며 학교 신문(?) 같은 곳에 실리기도 했다. 그렇다. 한마디로 10대까지는 내 글로 사람들이 나를 공격할 기회 자체가 드물거나 그냥 마냥 칭찬을 '당했던' 것이다. 내 글은 애당초 어떤 문제가 있었더라도 10대까지의 주변 환경은 이를 굳이 크게 문제 삼진 않았던 것이다.


자, 무엇이 문제였을까. 어쩌면 아마 유일하게 이를 염려하고 잔소리하셨던 분이 바로 엄마셨다. 그리고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1도 못하는 당신께서도 하신 '더 먹어라 더 먹어라'에 이어 거의 두 번째로 랭크된 잔소리:


책 좀 봐

가장 큰 원인은 독서 부족. 스스로도 모르는 바는 아녔지만 온라인 게시판에서의 첫 상처 이후, 나의 글쓰기 문제점은 그 이후 여러 사건들을 양산했다. 어쩌면, 아니 솔직히 그 어린 나는 (부족한) 글을 (창의적) 글로써 무마시키고자 작당하듯 써내기를 일종의 '내 문체'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과도한 암호화에 기반한, 이상과 아폴리네르 저리 보내버릴 듯한 숨 막히는 시각화. (말하기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정말로 많은 시간을 말 그대로 쏟아붓고 또 부으며 써댔다. 당연히 근본적인 해결 없이 나의 글은, 뭔가 균형감 없이 특정 부위만 운동한 것처럼 비대칭 괴물이 되어 갔다. 그나마 예술적 영혼들 일부는 이런 내 글에서 때론 영감을 얻기도 했겠지만, 주로 영감을 얻은 것도 사실 나 자신이었다.


또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내가 타의로 소모임 회장이 되어 게시판에 공지를 하는데, 확실히 나의 글쓰기 문제점이 원전 터지듯 방사능을 배출키에 이른다. 수십 명을 쉬이 (그땐 없었던 말이지만) 멘붕에 빠뜨리는 공지. 다행히 나는 글을 고치고 다듬는 데에 아낌없는 스타일이라 그네들의 피드백에 의해 글 고치는 게 취미나 다름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네들도 착한 사람들, 욕하기보다는 어쨌든(?) 피드백을 주었다. 내가 너무 기뻤던 것은,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공지글 댓글에 이제 좀 뭔가 이해가 가고 정리도 깔끔하다는 칭찬이 달리기 시작했던 순간, 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얼마나 내가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 어떻게든 글을 읽히게 만들려고 만연체를 소탕하고 중요한 내용을 서두로, 요약하고 강조하고 등등. 그때 그런 노력이 훗날 회사 이메일을 작성하는 데까지 이어지게 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질문, 나는 글쓰기가 왜 어려울까?


그래, 이처럼 살아온 나로서는 완벽주의와 남들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언제나 글쓰기에 드는 추가 비용이 돼버릴 수 밖엔 없었다. 여기에 현재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졸업 이후 SNS 세상이 가한 위협이 아닐까 싶다. 뭐랄까, 과장되게 표현하면 뭐든 글이 길면 스스로 뭔가 내가 꼰대인가 의심이 드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촌철살인형 문장이 큰 인기를 끌 때다. 지금이야 휘청거리는 트위터의 120, 140자 포맷에 타협을 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긴 호흡의 글을 읽은 것은 원래도 어려웠지만 적어내는 것도 버거워지고 말았다. 가끔 트윗을 여러 개로 연이어 조금 긴 호흡을 만들어 볼 뿐, 글을 적고자 하면 잘 되진 않는 것이다. 30대가 되면서 20대에 잘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가 몇 가지 있는데,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것도 그중 하나였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면서 기본적인 맞춤법 오류 등이 있는 글을 쓰기도 겁나고, 마냥 모든 것들을 챙기기엔 재미도 없고, 예전에 잘했던 운문도 산문도 아닌 글을 지금도 쓰는 게 뭔가 역행하는 것 같고... 핵심역량이기도 한 독서량이 그렇다고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도 아니다 보니, 표류하듯 지금까지 오고 만 것이다. 또한, 다른 정보 소화의 시간이 엄청 늘어나다 보니까 긴 호흡의 글이 이러한 정보들을 처리하기에 적절치 못해 더 멀어진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이쯤 되면 생산성에 대한 부분 하고도 연결고리가 많은 게 느껴진다.


그래서, 글쓰기를 어렵지 않게 만들기로 했다.


그냥 틀리고, 또 틀리되 읽어보고 내가 느끼기에 자연스럽게만. 당분간은 오래 간직해온 생각을 글로 전환하는 작업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서서히 객관적인 내용을 만들어 가기로. 끝으로, 재미있고 유익한 꼰대가 되어 끝내 꼰대라는 꼬리표 제거하기. 이를 위해, 자꾸 쓰고 읽고 보여주고 고치고 자주 할 것!



Cover Photo by Olia �� Goz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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