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와 약속을 잡았다. 한껏 들뜬 나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떠있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내린 비로 오전 일정이 취소되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나는 당황했다. 그래도 오전에 같이 보면 좋겠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일이 갑자기 생겨서 어렵겠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나 혼자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계획이 틀어져서 속상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당초 예상보다 30분 늦었고 미안한 기색이 없었다. 화난 나는 왜 내가 화났는지 차근차근 설명해줬다. 그리고 난 화를 풀었다. 대화가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이후 일정에 충실했다.
2. 시간이 지나고 보니 반대로 그 친구가 화나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뭘 해도 화내고 짜증 섞인 말투였다. 말을 하지 않길래 여러 가지 대화를 시도해봤다. 하는 대화마다 단답형에 까칠한 대답이었다. 사실 그 친구에게 나에게 왜 그런 태도인지 허심탄회하게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마치 불난 집을 들쑤시는 것만 같았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3. 나는 대화가 잘 되는 상대가 좋다. 물론 MBTI가 다르고 성격이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야기에 얼마나 귀 기울여 듣느냐이다. 그 당시 대화를 복기해보면 나는 나의 대화를 하고 있었고, 그 친구는 그 친구의 화법으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 친구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자 노력했지만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4. 그 이후 며칠이 지났다. 좀 나아졌나 싶어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별 진전이 없다고 느꼈다.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상대방도 그렇기를 항상 바란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게 잘 되지는 않는다.
5. 누군가와 추억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마음이 나를 향해있지 않는다면, 적어도 차이를 인정하고 같이 발맞춰 갈 생각이 없다면. 쿨하게 끝내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람의 감정에는 이유 따위는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