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MBTI가 극 J로 나온다. J는 말 그대로 계획형 인간이다. 오늘 하루 일정, 일주일 일정 더 나아가 미래 일정까지 계획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당최 알 수 없는 하루보다는 예측되는 하루가 좋다. 새로운 미지의 길보다는 한번 가본 길이 좋다. 새로운 음식보다는 이전에 먹어봤던 맛있는 음식이 좋다. 그래서 현재 몸담고 있는 조직이 좋았다. 혼자 일할 경우가 많고 내 상황에 맞게 일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야근도 예측이 됐고, 칼퇴도 예측이 됐다.
2. 그런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프로젝트에 덜컥 투입이 되었다. 오늘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이번 주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었다. 내부 회의는 몇 시에 하는지 알 수도 없었고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도 몰랐다. 회의하느라 저녁 늦게까지 일한 적도 있었다.
3. 야근이 잦아지고 회의가 길어지니 컨디션이 점점 안 좋아졌다. 어느 날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는 날도 있었고, 어느 날은 반짝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었다. 늘 그렇듯 내 컨디션에 맞춰 프로젝트는 돌아가지 않았고, 나는 그것과 상관없이 일해야만 했다. 계획형 인간이 계획되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를 보면 말 그대로 처참했다.
4.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우선은 하루에 예상할 수 있는 일정을 늘려나갔다. 보통 저녁에 운동하는 일정이었는데 고정적으로 운동을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전에 유산소를 고정으로 끼워 넣었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면 되니까 가능했다. 그리고 점심시간을 활용해 밥을 빨리 먹고 남는 시간에 운동을 조금씩 했다. 이런 식으로 무계획한 일정에서 계획된 일정의 분량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5.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다. '언제든 내가 예상하는 대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언제든 회의가 길어질 수 있다.' '언제든 회의가 잡힐 수 있다.' '내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 갑자기 들어올 수 있다.'라고 스스로 그런 마음가짐을 갖고 내려놨다. 그랬더니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6. 계획형 인간이라 삶이 괴롭다. 삶은 항상 계획대로만 흘러가진 않으니까. 그렇지만 계획형 인간이라서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잘 맞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내 계획대로 착착 일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결국 모든 일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비록 지금은 많이 불안정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안정적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언젠가는 아무런 계획 없는 삶에도 그 의미를 찾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