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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 D Jul 28. 2021

육아의 UX

두 아들 아빠가 육아를 UX 관점에서 바라본 글

나는 두 아들의 아빠다.


8살, 5살 두 아들의 육아를 아내와 함께 현재 진행 중인 초보 아빠다.

이제 육아 신입사원을 겨우 벗어난 수준 정도지만, 지금껏 아이들과 함께 자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UX의 관점에서 기록해본다. (그저 육아를 이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읽혔으면 한다.)


1. 고객의 정의

육아의 고객은 다면적이다. 일반적 B2C 상품의 UX라면 타깃 고객을 정의하고, 필요에 따라 고객을 마이크로 세그먼트 해서 전략을 수립한다. 이는 상품 메커니즘이 수요자(고객)와 공급자(기업)의 1:1 매칭 구조이기 때문이다.(마이크로 세그먼트의 경우도 결국, 고객 세분화를 통해 그들의 꽁꽁 숨겨진 니즈를 찾고, 이를 공략기 위한 것이며, 선형적 상품 메커니즘을 다중으로 설계하는 느낌이다.)


반면 육아는 이보다 좀 더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단 공동 육아 책임자인 아내가 존재하고, 육아의 대상인 두 아이가 있다. 또한 육아의 관점에서 아빠(나)는 서비스 제공자인 동시에 고객이기도 하다. (이 부분은 뒤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여러 고객의 니즈가 충돌하는 경우가 자주 연출된다. 예를 들어 두 아이가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상황이다. 엄마는 오전에도 많이 봤으니 보지 말았으면 하는 니즈, 첫째 아이는 포켓몬 극장판을 보고 싶다는 니즈, 둘째 아이는 또봇을 보고 싶다는 니즈, 아빠는 이런 다툼이 빨리 없어졌으면 하는 니즈... 결국 상황은 난장판이 되곤 한다. 엄마가 아이들을 혼내고, 아빠는 혼내는 엄마를 못마땅해하고... 일반화 하긴 어렵지만 아마도 종종 목격되는 상황일 것이다.


사실 이 니즈들은 서로의 니즈를 제한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동시에 충족될 수 없다. 대부분 한 명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은 본인의 니즈를 참아야 한다.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위에 적힌 불편한 진실에 대해 부부의 깊은 합의가 필요하다. 부모, 부부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니즈를 제한한다는 것이 썩 즐거운 결정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부부의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전략적 접근을 실행하면 시작도 못한 채 감정의 골이 생길 수 있다.


부부의 합의가 된 상태라면, 니즈 충돌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에 대해 내가 내린 결정은, 상황에 따라 니즈 우선권을 선택하고 이에 대한 가족 전체의 합의를 대화(언어)로 선언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입학 직후의 첫째 아이가 내외부적 스트레스를 받는 시점임을 감안해서 최대한 첫째 아이의 니즈를 우선하는 것으로 부부, 그리고 둘째 아이와 대화하는 것이다. 5살짜리 둘째도 이 상황에 대해 어른의 걱정에 비해 훨씬 잘 이해했다. 아직까지 이 육아의 전략은 제법 잘 동작하고 있다.


2. 아빠도 고객이다.

일단 인정해야 한다. 아빠는 엄마보다 육아를 못한다. 물론 요즘 아빠들 중 육아의 영역에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육아의 고수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이 영역이 노력에 의한 성취나 개선의 범주라면, 엄마의 그것은 본능과 반사신경에 가깝다. 육상을 잘하고 싶은 마음(부성애, 모성애)은 두 선수에게 똑같으나, 잘 달릴 수 있도록 타고 난 체질은 다르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빨리 이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아내에게 감사해야 한다. 엄마들이 육아를 잘한다는 것이, 육아의 고단함을 쉽게 견딜 수 있다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엄마, 그리고 내 아이들의 엄마에게 늘 고맙다.


그런데 이 고마움이 자칫 아빠 자신을 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퀄리티 측면에서 엄마의 육아 기여도가 높다 보니, 위에서 설명한 니즈 충돌의 상황에서 자연스레 아빠 본인의 니즈를 가장 후순위로 놓는 것이다. 사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빠도 육아 시스템의 고객이다. 아빠도 아내의 감정적인 지지를 원하고, 본인 스스로의 욕망을 가진 존재다. 이것을 노력으로 억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누르다 보면 결국 화나 분노로 표출되곤 한다. 누르고 누르다가 본인과 가족들을 향해 화를 토해내는 것보다, 차라리 아빠 본인이 처한 심리적 어려움을 아내와 아이들에게 공유하고, 도움을 청하는 것이 훨씬 낫다. 세상에서 아빠를 고객으로 기꺼이 대해주는 사람은 아내와 아이들 밖에 없다.


3. 육아와 UX, 그것이 본질적으로 향해야 하는 것

UX 디자이너는 무엇을 위해 UX를 고민하는가? 성과를 만들기 위해, 기업의 이유 추구에 기여하기 위해, 좋은 평가를 받고 진급하기 위해... 모두 맞는 소리다. 하지만 정말 좋은 UX 디자인은 고객이 즐거워하는, 편리해하는, 쉽게 사용하는 그것을 만들기 위할 때 나온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육아를 고민하는가? 좋은 학교에 보내고 성공시키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육아의 본질은 가족의 즐거움에 있다. 이를 위해 우리는 가족, 육아의 고객들을 좀 더 섬세하고 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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