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로 이직해야 할까요?
거기서 일하는 건 어때?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좋아?
아마존으로 이직 후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인데, 아직까지도 답하기가 쉽진 않다. 물론 좋은 점은 확실하다. 일단 커리어 성장의 잠재성과 연봉 차이가 크고, 의사결정 구조나 팀 분위기가 훨씬 수평적이며 업무시간 또한 어느 정도 유동적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단점 또한 많이 존재한다. 일단 수많은 레이오프들로 팀이 조정되면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것과, 높은 연봉 및 자유도만큼이나 능동적으로 뽑아내야 할 업무량이 많다. 그중 자유와 자율의 양면성, 그 양날의 칼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21년 10월부터 입사 이후 1년간, 총 4번의 레이오프가 아마존을 덮쳤다. 코비드 때 한창 몸집을 키운 테크회사들은 경기불황을 대비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는데, 첫 레이오프는 내가 입사 후 삼 개월 정도밖에 안 되었던, 아직 프로젝트와 팀에 적응 중이던 시기였다. 뉴스 및 블라인드를 통해 아마존에서 이번 주 몇만 명을 해고할 예정이며, 이중 HQ 인 시애틀 본사에 있는 팀들 또한 포함될 것이라는 내용을 마주했다. 이는 비단 우리 회사뿐의 이슈가 아니라, 회사 크기에 상관없이 전반적인 테크업계에서 일어났던 레이오프의 물결로 이미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대규모 레이오프를 예고하고 있던 시기였다. 개인의 성과를 보고 저성과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해고가 아닌 사업 방향에 따라 팀 전체를 구조조정하는 시기였던지라 개인이 잘,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그 파도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 파도가 우리 팀을 향하지 않길, 우리가 있는 이 섬은 잔잔하길 바랄 뿐이었다. 당시 아직 영주권이 없는 학생비자인지라 레이오프에 대한 걱정은 더했다. 학생비자 (F1) 이든 취업비자 (H1-B)든, 영주권이 아닌 이상 직장을 잃으면 총 90일 동안 재 취업의 기회가 보장되는데 (Grace period), 이는 다시 말해 약 세 달간의 기간 동안 이직을 하지 못한다면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된다는 것과 같다. 하지만 경기 불황의 파도가 한 섬에만 몰아치지 않듯이, 회사들이 레이오프를 하는 기간에는 다른 대부분의 회사들도 채용을 멈췄거나 레이오프를 단행하기에 단 3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새롭게 직장을 구하기는 그 누구에게도 쉽지 않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매번 마음을 졸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아침 8시 회의가 있어 조금 일찍 메일함을 열었는데, ‘중요한 공지 (An important update)’라는 제목으로 프라임비디오 주요 임원(VP)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미국 서부 시간으로 아침 6시, 동부 시간으로 아침 9시에 도착한 이 메일은 오늘 우리 팀에 레이오프가 있을 예정이고, 당사자들에게는 오늘 오전 중으로 개인통보가 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직 뇌도 덜 깬 이른 아침, 순간 회의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뭘 해야 하지? 왜 입사 후 일 년이 넘도록 포트폴리오 정리를 아직도 하지 않았을까 게을렀던 스스로를 원망하며 머릿속이 하얘진 채, 친한 팀원들과 지속적으로 매니저에게 추가적으로 들은 내용이 있는지 공유했다.
몇 시간 뒤, 레이오프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개인별 메일 발송이 완료되었다는 또 한 번의 공지메일이 왔다. 다행히도 프라임비디오를 흔들었던 파도는 우리 팀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고, 그렇게 다들 아무 일도 없던 듯이 업무를 지속했다. 입사 일 년 만에 마주한 네 번째 레이오프. 그 앞에서 내가 배운 건, '자의든 타의든 다시 마켓에 나가게 되었을 때, 나의 가치를 언제든지 스스로 증명하고 높일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내국인으로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서 회사를 다니었을 때는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던 내적 뿌리가 흔들리는 불안함이었다.
이렇듯 고용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기에, 직장을 다니더라도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보여주는 것은 성실하게 맡은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을 넘어서서 미국사회에서 요구되는 필요 소양이다. 내가 서울에서 여러 해 동안 다녔던 전 회사는 업무시간을 트래킹 하는 곳이었다. 사원증으로 입문, 출문의 기록이 초 단위로 기록되었고, 외부 미팅을 위해 출문한 게 아닌 병원, 은행 등 개인적 사유로 업무시간 중 이동이 있었다면 근태 사이트에서 제외시간 입력을 통해 업무시간기록을 관리해야 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의 회사는 근무 시간에서 매우 자유롭다. 정해진 출, 퇴근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집에서 근무를 하던 오피스를 나오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변경된 정책 (Back to the office)로 인해 주 3일은 오피스로 출근을 해야 하긴 하나, 이 또한 정해진 시간 없이 자유롭게 오피스를 나오면 되며, 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팀의 경우에는 꼭 지정된 오피스를 가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이 가고 싶은 오피스에 출근이 가능하다. 무려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역삼역 센터필드에 있는 아마존 서울 오피스를 갔었는데 그것 또한 오피스 출근 기록으로 인정되었다. 이렇듯 업무시간이 자유롭기에 중간에 병원이나 아이들 보육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것이 어렵지 않고, 눈치를 볼 필요조차 없다. 출, 퇴근 시간에는 길이 막히기에 아침 회의들을 집에서 마치고, 점심을 먹고 회사에 출근하거나 - 혹은 퇴근길 혼잡 (Rush hour)을 피하기 위해 오후 3시쯤 퇴근하여 집에서 마저 업무를 보는 것 또한 일상화되어 있다.
합리적이고 편해 보이는 업무시간의 유연성, 하지만 이는 그만큼 본인의 가치를 성과로 보여줘야 함을 의미한다. 사무실에 주 40시간 이상을 앉아있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닌, 주 30시간이 되었든 50시간이 되었든 - 네가 얼마나 일을 주도적으로, 높은 퀄리티로 했는지를 보겠다는 거다. 아무도 업무 시간을 재지 않기에, 스스로를 본인의 성과로 입증할 수 없다면,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고 팀에 적응하기 또한 어려워진다. 그래서일까 ‘주어진 일을 빠릿빠릿하게 잘하는 것’이 중요했고 상대적으로 다른 디자이너들이 진행하고 있는 다른 업무에 대해 신경 쓸 시간이나 여력이 없고 그렇지 않아도 되던 나의 이전 직장 경험에 비해, 이곳은 서로가 서로에게 오히려 더 업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자신의 일의 범위가 아니더라도 주도적으로 팀원들에게 연락해서 자신의 생각이나 작업을 공유하는 게 굉장히 흔하고 중요하다.
커리어를 위해 미국으로 이직해야 할까요?
예, 혹은 아니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개인이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달렸다. 미국의 테크회사로 이직을 할 경우 당연히 연봉은 높아지고 자율성도 올라간다. 하지만 그 자유와 자율은, 역으로 본인이 회사의 의지로 인해 언제든 직장을 잃을 수 있고, 또 새로운 취업 준비에 들어가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또한 자유로운 시간과 장소 속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평균적인 한국회사들, 한국 문화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업무 영역을 확장하고 자신을 어필해야 하기도 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 하나 염두해야 할 것은 - 너무나 당연하게도 - 커리어는 삶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 많은 에너지를 쏟는 직장인만큼 당연히 커리어는 우리 삶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직장 또한 하나의 사회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인지라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많이 있다. 커리어만을 바라보고 미국으로 온다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요소들을 마주했을 때, 익숙하고 든든한 기반이 있던 한국에서보다 더 쉽게 좌절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언어차이 외에도, 고국을 떠나 새롭게 삶의 터전을 만든다는 건 - 한국에서 본인이 누려왔던 지위, 편리함, 편안함을 내려놓고 일정 부분 삶을 리셋함을 포함하기도 한다. 즉, 커리어를 위해 미국으로의 이직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역설적으로 커리어 외의 삶에서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미국으로 취업 이민을 왔을 때, 본인이 그 부분을 잠시동안 내려놓거나 혹은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