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y / them: 제3의 성을 통해 본 사회의 다양성.
2021년 9월
부모님께 미국 유학을 보내달라던 17살 소녀는 십 년이 훌쩍 넘어서 드디어 첫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설렘, 기대,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내가 진학한 UW (University of Washington)의 MHCI+D 는 11개월간 거의 방학 없이 4 쿼터제로 약 35명의 학생들이 한 클래스가 되어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1년이 안되며 소수의 인원으로 채워지는 클래스인 만큼 우리 프로그램은 이 과정에 대한 학생들의 빠른 적응 및 친밀감 향상을 위해 처음 2주간 Immersion studio를 운영한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뤄지는 밀도 높은 워크숍에서 4명씩 한 팀이 되고, 매 년 새로운 Design prompt를 주제로 디자인 솔루션을 도출하는 과정이다. 해당 학기의 디자인 프롬트는 도시 접근성 (Urban Accessibility)으로, 도시 내에서 필드 리서치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니즈를 찾고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프로젝트였다.
Hello all! I’m Tim (가명), go by they/them.
수업 첫날, 처음으로 다 같이 스튜디오에 모이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 본인의 성별을 남/여가 아닌 제3의 성(Non-binary)으로 규정짓는 친구가 있었다. They/them이라고? 미국 문화에 꾸준히 접하고 살아왔다고 느꼈는데 본인의 성별을 직접 본인이 언급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그걸 왜 굳이 말을 해야 하는 거지? 당연히 보이시한 여자라고 생각했던 그 친구는 내가 복수명사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They/them을 사용하고 있었다. 학부시절 꽤 문화적으로 오픈된 학교에 다녔고 LGBTQ (게이, 레즈비언) 야 성적 취향이 다를 수 있다는 거야 인지하고 있었지만, 본인을 남/여 그 두 가지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는걸 마주한 적은 처음이었다. 내가 삼십 년간 알던 성별은 두 가지뿐이었는데 이곳에는 Man / woman 말고도 Non-binary, prefer to not answer 등 다양한 성에 대한 관념이 존재했다.
그 동기는 그 뒤로도 계속 They/them의 pronouns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학과 파티에 데려온 그 친구의 파트너 역시 같은 호칭 (pronouns)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성별, 성정체성에 대한 배려는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정확하게 본인이 표현하기 전까지는 상대방의 남자친구, 여자친구, 부인, 남편을 가정해 말하지 않고, 파트너(partner)로 통합 지칭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자인 친구의 애인이라면 너의 ‘남자친구’라고 가정하고, 결혼한 분이라면 ‘남편’ 일 거라 가정했던 나에게 ‘파트너’라는 명칭은 타인의 성정체성과 성지향성, 결혼유무를 미리 판단하지 않고 그들이 정의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불러주려는 배려, 그리고 실수를 예방할 수 있는 방지턱과 같은 것이었다. 실제로 학기 중 다른 수업을 맡았던 교수님의 경우에도 생물학적 남자였으나 여성으로 전환한 트랜스젠더였으며, 남편이 아닌 와이프가 있는 사람이었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와이프를 와이프로 우리에게 소개했다. 당연한 거지만, 학기 내내 그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거나 이슈로 삼지 않았고 그의 강의 내용과 스타일, 과제에 대한 부분만의 회자되었다.
주어진 정체성보다, 나의 정체성을 내가 규정하는 사회.
그게 예외적이거나 특이한 게 아닌 그 자체로 그냥 받아들여지는 사회. 물론 미국 전역에 대한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캘리포니아를 포함한 미국 서부는 미국 내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지역에 속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경험한 미국은 내가 바다 건너 한국에서 보고 들었던, 출장과 여행으로 와서 즐겼던 미국보다 더욱 다양성을 중시했고, 소수자의 가치를 배려하고 있었다. 이는 단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여성으로 살고 있는 나 또한 이미 다수가 아닌 소수의 위치에 있는 것이며, 시애틀에서 나고 자란 백인 남성에게 나는 한국에서 온 영어가 다소 어눌한 동양여성 소수자일 수 있다.
MHCI+D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 년 내내 다양성을 중시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는데, 프로그램의 가장 처음 프로젝트인 Immersive studio에서도 도시 접근성에 대해 직접 탐구하고 디자인 솔루션을 제시하게끔 한 것 또한 그만큼 학교에서도 다양성을 포용하고 우선시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자는 의미와 조금 전제가 다르다. 그들을 도와주고 배려해야 할 존재로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보다, 동등한 인격체로서 그들이 그 평등함과 동등함을 침해당하지 않도록 디자인하는 것에 가깝다. 즉, 이미 장애가 없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을 장애인을 위해 '개선'하기보다, 처음부터 모두가 편하게, 방해받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Universal design)을 지향하는 것이다. 장애인을 지칭하는 단어 또한 장애인 (disabled person) 이 아닌,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 (the person with disability)로 표기하는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참조: People-First Language: This perspective puts the person first, allowing them to not be defined by their disability. Instead of saying “disabled person” say “the person with a disability”. Emphasize the person and their identity rather than first describing a disability.)
한국과 미국 사이를 횡단하는 대한항공을 타면,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자주 나온다. 다양한 재료들이 고추장과 참기름과 비벼지며 고유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어우려 새로운 맛을 내는 것. 미국의 다양성은 비빔밥과 닮아있다. 다양한 인종, 문화가 한 곳에 모여들고,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고 일하며 서로 섞이며 시너지를 내는 곳. 이곳에 와있는 수많은 인도인들을 보면,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동, 서양권 가릴 것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브라운 잉글리시를 쓰지만 자신들의 발음이 우리가 흔히 아는 미국 영어와 다름에 전혀 개의치 않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의견을 피력한다. 그러면서도 드왈리(Dewail: 인도의 빛의 축제)나 홀리(Holi:선이 악을 이기고,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왔음을 기념) 등 인도인들에게 중요한 문화를 잊지 않고 이곳에서도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즐기며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다.
학교로 돌아간 첫 유학생활에서 어떤 걸 배웠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고민 없이 1. 다양성 2. 디자인 스토리텔링이라고 답한다. 미국에서의 첫 일 년, They/them을 쓰는 친구로부터 배운 다양성은 졸업 후 이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내 삶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주춧돌이 되어있다. 마치 흑과 백처럼, 남/여 두 가지의 성만 존재하던 사회에서 온 나 또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미리 가정하여 말하지 않게 되었고, 현재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게이 동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그들의 남편이야기를 듣고 수다를 떠는 사람이 되었다.
반만년 한민족을 지켜온 한국 또한,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결혼으로 점점 다민족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0.6명 (2024년 6월 기준)의 출산율은, 다른 민종, 나라로부터의 노동력을 공급받지 않고는 심화되고 있는 노동력부족현상을 극복할 방안이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은 마치 모난 돌이 정 맞듯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다양성이 일상이 되는 곳.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곳. 한국도 그런 비빔밥 같은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