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의 문제가 애초에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많은 경우, 사용자는 본인의 문제를 언어로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본인이 무엇이 불편한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가설을 세우고,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자의 내면을 관찰하고 추론하며 ‘문제의 실체’를 좇는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니즈나 통계적 결과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는 본질적인 원인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과정이다.
방법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프레임일 뿐, 그 자체로 답을 주지는 않는다. UT나 인터뷰, 여타 질적/양적 조사 툴을 쓴다고 해서 정답에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방법을 얼마나 잘 활용했는지, 도출된 인사이트가 얼마나 실질적인 행동 유발로 이어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양산형 조직은 시급성이 높은 문제 해결이 중심이다 보니, 방법론 하나하나를 교과서처럼 따져서 적용하기보다는 실무 맥락에 맞춰 유연하게 활용하는 편이다. 사용자 리서치에 집중하는 일부 조직에서는 오히려 방법론에 과몰입하게 되거나, 실체 없는 자료만 쌓이다 끝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방법론을 쓸 줄 아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문제를 해결했는가’다. 그걸 위해선 방법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과 실전 감각도 함께 길러야 한다.
사용자 조사의 또 하나의 어려움은 결과의 해석에 있다. 응답자는 특정 방식으로 답변을 하더라도, 실제 행동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이른바 ‘말과 행동이 다른’ 인간의 복잡성이다. 때문에 리서치를 통해 수집한 데이터는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라, 실마리에 불과하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관찰과 추론, 컨텍스트에 대한 해석력을 길러야 하며, 조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특히 문제정의 과정에서는 ‘이게 문제인가?’ 하는 끊임없는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비로소 남들과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직관적 판단력’은 훈련을 통해서만 생기는 역량이다.
현업에서는 시간, 예산, 조직 구조 등의 제약으로 인해 조사의 정밀도를 끌어올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방법론적 정합성보다 더 중요한 건, 그 한정된 리소스 내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는 스토리라인을 만들고 결과적으로 실행 가능한 방향을 제시했느냐다.
특히 인하우스 UX조직에서는 단기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실용적인 문제 정의가 요구되기 때문에, 이상적인 리서치보다는 현실적인 절충안을 도출해야 할 때가 많다. 그래서 문제정의란 ‘탐험’이라기보다는 ‘전략적 포지셔닝’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술래를 잡는다는 표현보다는, 특정 맥락에서 가장 효과적인 문제를 ‘선택’해 집중하는 일이 더 많다는 의미다.
결국 문제를 정의한다는 것은 주어진 데이터와 관찰을 통해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의미 있게’ 해석해내는 작업이다. 당연히 논리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감정과 직관이 녹아든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제정의 단계에서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다양한 시각을 가져보고 충분히 헤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
술래잡기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지금 제대로 탐색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반대로 처음부터 너무 명확한 문제를 정해놓고 시작했다면, 어쩌면 표면적인 니즈만 보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UX는 정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의미 있는 선택지를 만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용자 조사를 통해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 헷갈리고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이 술래잡기 같은 과정을 반복해왔고,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왜 이게 문제인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근거와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며, 이는 곧 유능한 UXer의 핵심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