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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요] 유엑서로 일하고 싶어요 #018

by UX민수 ㅡ 변민수


학창 시절의 경험을 생각해 보면, 어떤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르면 쉽게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었다. 정해진 과목과 시험범위, 일정 등이 있고 나는 맞추기만 하면 됐다. 물론, 맞춰야 한다는 부자유는 고통이고 괴로움이지만, 시간이 지나 차선조차도 그어져 있지 않은 길을 주행하려 하는 인생의 여정 앞에서 당혹스러운 건 눅구나 마찬기지일 것이다.




진입 경로의 다양성


실제로 현업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UXer들의 출신 배경은 디자인(d) 전공자뿐만 아니라 공학, 심리학, 인문학 등 각양각색이며, 진로의 흐름도 매우 유동적이다. 나 또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지만, 졸업 이후 영상작업, 전시기획, 모바일 앱 기획 등을 경험하며 UX라는 분야로 귀결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탐색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이 오히려 지금의 전문성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분야 저 분야에서의 경험들이 조금씩 조금씩 모여서 UX라는 전문성을 뒷받침해 줄 자양분이 되었다 보니, 어떻게 나처럼 되라고 알려주기가 대단히 어렵게 육성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등산과 등반에 비유한다. 정상까지 오르는 게 목적이라면 모두가 가는 등산로를 통할 수도 있겠지만, 등반을 통해 나만의 길을 개척해도 되는 것이다. 좀 험할 순 있어도 말이다. 겪어본 현업의 UXer의 여정 대부분도 사실상 등반에 더 가까웠다. 이렇듯 경로는 매우 다양했다.



공통의 자질보다 경험이 중요


UX라는 분야는 융합학문의 성격이 강하고 실용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어떤 전공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상대적이다. 복수전공이나 전공 변경이 고민되는 분들에게도 “무엇을 공부했느냐”보다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싶은 이유다. 즉, 지금의 내 전공으로도 어떤 접점을 만들어 내느냐가 더 중요한 일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회사에서 UX 인재를 뽑을 때는 이 사람이 얼마나 현업의 맥락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 경험이 있는지, 실제 사용자 관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지를 더 많이 본다. 전공 선입견을 오히려 깨고 회사를 향한다면 아무것도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학력과 학벌 등의 이슈는 논외로 보자. 그러나 기본적으로 어떤 학교를 나왔는가 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어떤 방식으로 기여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받게 된다. 왜냐하면 당장 내 옆에 와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시뮬레이션되는 사람인 것이 더 절실하기 때문이다.



우연과 경험의 설계


많은 UXer들은 결과적으로 이 분야에 오게 된 동기가 ‘의도된 기획’보다는 우연한 경험의 연속에 더 가까웠다. 따라서 이제부터 준비할 이들도 너무 차려진 밥상의 부재를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나 역시 처음부터 UX를 목표로 정해놓고 달려온 것이 아니라, 여러 직무와 프로젝트를 경험하면서 UX라는 분야의 매력과 필요성에 점차 눈을 뜨게 된 경우다. 뭔가 자력에 이끌려 서서히 가까워온 여정이라는 표현이 더 현실감 있는 표현 같다.


오히려 이렇게 다양한 길을 경험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정립해 나가는 것이 UX라는 직무의 복잡성과도 맞닿아 있다고 본다. UX 필드 안에 여러 세부 분야가 있는 만큼, 또 UX 업무 자체가 다양한 이해관계자와의 협업과 다학제적 사고, 실제 사용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실체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헤맨 경험을 가진 사람이 더 잘 흡수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의도와 계획이 전부나 다름없는 이들에게서는 준비의 늪에 빠진 경향을 발견해 안타까웠다. 준비는 완벽을 기하는 것보다는 경력자체를 쌓는 것을 준비라고 봐야 하는 이유다. 특히나 공채가 없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조직과 역할의 차이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마다 UX를 조직화하고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다르단 점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UX를 정성적, 정량적 리서치 업무로 정의하거나, UI 디자인(d)의 연장선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전략기획부터 사용자 중심 사고 전반을 다루는 조직도 있다. 그냥 일반화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보는 게 옳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회사를 가느냐에 따라 UXer로서의 역할도 천차만별이다. 즉,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거나 진로를 탐색할 때는 내가 어떤 회사, 어떤 조직, 어떤 도메인에서 UX를 하고 싶은지를 먼저 그려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 입맛에 맞는 사람으로 포지셔닝이 되면서 전형에서 경쟁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에 맞는 경험과 언어를 준비하는 것이 훨씬 더 전략적인 접근이 될 수 있다. 즉, 효율적인 방안이기도 하단 소리다.



실무 경험의 가치


UX는 특히 실무 경험의 유무가 큰 차이를 만드는 분야다. 학문적으로 UX를 이해하고, 툴과 방법론을 익힌다고 해서 곧바로 실무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이나 에이전시 등에서 짧게라도 일해보는 것이 UX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보통 이러한 경험을 저울질하는데 경력 초반부에는 저울질은 의미가 없다. 당장 배가 고픈데 햄버거면 어떻고 라면이면 어떤가? 상하지 않은 음식이라면 다 괜찮은 것이다.


사용자 중심 사고가 실제 현업에서는 어떤 제약과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지, 기획과 디자인(d), 개발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되는지를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또 실무 경험이란, 단순히 스펙이 아니라 UXer로서 사고하는 프레임을 얻게 해주는 것이기에 지식의 영역에 국한 지어서는 곤란하다. 두렵겠지만 몸이 앞서 나아가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자기만의 루트 설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신만의 루트를 스스로 설계하고 정의하는 용기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질적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 즉, 이것은 가장 중요한 내 커리어에 대한 장기투자 전략인 셈이다.


다른 사람의 이력이나 루트를 따라가기보다는, 지금 자신의 관심과 가능성을 기준으로 우선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시도해 보고, 실패도 겪어보고, 그러한 경험이 누적되며 점차 본인만의 루트가 정립된다. 실패가 낙인이라 여기면 두려워서 한 발자국도 못 내민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UXer가 되기 위한 길은 정말 무수히 많다. 정해진 답이 없기에 더 많은 가능성과 자율성이 주어진다고 생각하고 본인의 스토리를 하나씩 채워가셨으면 좋겠다. 결국 정형화된 방법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그만큼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지닌 이들에게도 문이 열려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고민과 경험들 또한 UXer로 가는 여정의 일부라는 점을 기억했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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